[줌인]‘탑골 양준일’ 모델 김칠두…오팔세대가 사는 법

62세에 데뷔한 ‘시니어 모델’의 선두주자
'패션 스폿' 동묘서 쇼핑하고 유튜브 운영도
꼰대 소리 들으면 안 돼…젊은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두려울 게 없는 나이…체면 따지지 말고 도전하라"
  • 등록 2020-03-20 오전 6:30:00

    수정 2020-03-20 오전 6:30:00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시니어모델 김칠두.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이 나이 들어서 체면치레할 게 뭐 있어요. 해보지도 않고 주저앉는 것만큼 허망한 게 없잖아요.”

2018년 3월 가을겨울(F/W) 헤라서울패션위크 키미제이(KIMMY J) 패션쇼는 한 모델의 등장으로 술렁였다. 풍성한 백발 수염에 180cm가 넘는 훤칠한 외모의 노인이 젊은 모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등장했기 때문이다. ‘시니어 모델’의 대명사가 된 김칠두(64) 씨가 세상에 이름을 떨친 순간이다.

김씨는 최근 급부상 하고 있는 신(新) 노년층, 이른바 오팔(Old People with Active Lives) 세대의 아이콘이다. 오팔세대란 경제 일선에서 은퇴한 뒤 자금과 시간적 여유를 갖고 새로운 직업을 찾거나 취미 생활에 몰두하는 노년층을 뜻한다. 그들에게 김씨는 ‘시니어 모델’이란 새로운 길을 개척한 도전자로 여겨진다.

최근 김씨의 인기는 ‘양준일 신드롬’과 궤를 같이 한다. 두 사람 모두 주목하지 않았던 노년과 중장년층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고 현실적인 이유로 접었던 젊은 날의 꿈을 다시금 이뤄내며 동년배는 물론 10~20대의 우상이 됐다.

오팔세대의 상징으로 떠오른 김씨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1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소속사 사무실에서 김씨를 만나 오팔세대의 삶에 대해 물었다.

황학동 쇼핑에 유튜브까지…트렌드의 선봉에 서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됐지만 김씨는 ‘재래시장’을 고집한다. 본인의 몸에 맞거나 소장 가치가 있는 물건이 많은 날에는 10만~20만원을 ‘지르기’도 한다고 했다. 동년배들이 백화점에서 명품을 구입하거나 이커머스로 기성복을 주문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가 재래시장을 선호하는 까닭은 구제 의류를 비롯해 다양한 상품을 접할 수 있어 패션에 대한 안목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비싼 돈을 들이지 않고 나만의 아이템을 손에 넣는 합리적인 소비가 가능한 것도 재래시장을 찾는 이유다. 남들과 같은 경로로 비슷한 상품을 구입하기 보다는 나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데 가치를 둔 셈이다.

특히 그가 자주 방문하는 곳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동묘다. 동묘는 ‘도떼기시장’이지만, 자유분방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겐 명소가 된지 오래다. 실제로 불가리아 출신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프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동묘 황학동을 거니는 중·장년 남성들의 옷차림 사진을 올리며 세계 최고의 거리라고 평가했다.

김씨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다.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위주로 영상을 올리며 최근에는 츄러스를 먹거나 군용 철모와 총을 만지는 소리를 담은 자율감각 쾌락반응(ASMR) 영상을 게재하기도 했다. 유튜브는 최근 박막례 할머니를 비롯해 노년 크리에이터들이 늘어나면서 오팔세대의 새로운 놀이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시니어모델 김칠두


꼰대는 가라… 젊은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김씨는 세간에서 말하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멋을 추구하는 직업의 특성상 현장에서 젊은 사람과 작업하는 일이 잦기에 그들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라도 ‘꼰대’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꼰대란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은어로,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고 싶어 하는 상사나 어른의 1순위로 꼽히는 인물상이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최근 하는 일은 무엇인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묻는다고 했다. 64세 어른과의 협업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들의 마음을 열기 위함이다. 불필요한 조언도 되도록 삼가고 있다.

그는 “아무래도 내가 굉장히 어른이다 보니까 젊은 친구들이 말 걸기를 어려워해 먼저 이야기를 거는 편”이라면서 “한 마디씩 충고나 조언이 튀어나려고 할 때마다 스스로 깨닫고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누르려고 한다”며 웃었다.

젊은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딸과의 허심탄회한 대화였다. 27년간 운영해 오던 순댓국집을 정리하면서 김씨는 당장 생계를 꾸릴 방안을 고민해야 했다. 공사장 일용직도 고려해 봤지만 나이와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그때 딸은 “아빠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조언했다. 딸의 의견이 청년 시절 모델을 꿈꿨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나이에…’라는 생각은 금물…안 하고 후회하지 마라

다만 딸이 모델 일을 제안했을 때에도 처음엔 체면 때문에 망설였다고 했다. 시니어 모델이란 개념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나이에 무슨 모델이냐”며 딸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으로 학원비까지 대겠다는 딸을 보면서 ‘지금 아니면 할 수 없겠다’란 생각이 들었다고 모델 일을 결심할 당시를 설명했다.

아직은 데뷔 2년차 신인이라 벌이가 썩 넉넉하지는 않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고 그는 말했다. 특히 지인과 친구들이 “모델 일은 천생 네 직업이다”라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동년배들이 그의 SNS를 찾아 ‘용기를 얻었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했다.

그는 현재 서울패션위크 등 국내 유명 패션쇼에서 막시제이(MAXXI J), 바로크(BAROQUE), 디그낙(D.GNAK) 등의 모델로 활약하고 있다. 또 공중파와 종합편성채널에 얼굴을 내비치며 인지도를 쌓아올리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파리, 밀라노 등 국제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다.

김씨는 ‘포스트 김칠두’를 꿈꾸는 이들에게 체면을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특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만의 강점을 살려 도전하라고 했다. 그는 “이제 우리 동년배들은 두려울 것이 없는 나이 아니냐”면서 “생계가 달린 문제가 아니라면 실패해도 다른 일에 도전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모델 김칠두는…

△1955 경기 시흥 출생 △2018년 F/W 헤라서울패션위크 키미제이(KIMMY.J)쇼로 모델 데뷔 △2019 S/S 헤라서울패션위크 더갱(The gang), 2019 F/W 서울패션위크 바로크(BAROQUE)·디그낙(D.GNAK), 2020 S/S 서울패션위크 디그낙·쎄쎄쎄(setsetset)·홀리넘버세븐(holynumber7) 무대 참여 △2020 퍼스트브랜드대상 시니어부문 수상 △KT, 목우촌, 삼성화재, 롯데음료, 세정 등 광고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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