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愛憎)의 20여년"
사실상 인수자로 여겨졌던 포드자동차가 대우자동차 인수를 전격적으로 포기함에 따라 제너럴모터스(GM)와 대우차의 끊질긴 인연(?)이 다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78년부터 관계를 맺기 시작한 GM과 대우차의 인연은 포드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계기로 막을 내리는 듯 했다. 그러나 포드가 예상과는 달리 대우차 인수를 포기함에 따라 GM과 대우차의 20여년 역사가 다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GM은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극적으로 인수전에 참여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세계 자동차업계 1위인 GM이 포드의 맹렬한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 제품 및 지역적 포트폴리오상 매력적인 대우차를 자기 품안으로 끌어들이는 게 손쉬운 방법이라는 해석이다. 대우차와 마치 원수처럼 헤어졌던 GM이 대우차 인수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강력한 인수 경쟁자였던 포드는 물러났고 현대자동차의 경우 주변여건상 결코 유리하지 않은 상태다. 최대 관건은 인수금액이겠지만 GM이 대우차 인수에 나설 것은 확실하다. 어쨌든 대우자동차 인수를 놓고 GM과 현대차의 재격돌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애증의 20여년
대우와 GM의 첫 인연은 지난 78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우는 새한자동차의 산업은행 지분 전량(50%)을 인수하면서 GM의 파트너로 자동차산업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이에 앞서 GM은 지난 72년 6월 신진자동차와 50대 50 합작으로 자본금 4,800만달러의 GM코리아를 설립했다. 그러나 GM코리아가 1차 오일쇼크 등으로 부실화되는 바람에 1년만에 은행관리로 들어갔다. 산업은행이 신진측 지분 전량을 인수한 것이다. 산업은행과 GM은 76년 GM코리아의 회사명을 새한자동차로 바꾸고 합작 계약을 맺었다.
대우와 GM은 합작파트너로 함께 일한지 4년 6개월 뒤에 대우자동차로 회사명을 변경하고 경영권을 대우측이 행사하기로 합의했다. 대우차는 86년 GM의 기술을 그대로 받아들인 「르망」을 조립 생산, 국내외에 판매하면서 자동차업계에 명함을 내밀었다.
하지만 대우와 GM의 공조체제는 계속 삐걱거렸다. GM이 대우차의 국민차사업 등 신규투자와 수출지역확대 계획 등에 사사건건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우차는 독자노선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대우는 90년 12월 대우중공업 창원공장에 국민차 「티코」라인을 완공하고 이듬해 6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결국 대우와 GM은 91년 10월 수출지역 제한 문제와 증자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대우가 GM 지분 50% 전량을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92년 9월 인수 가계약을 체결한데 이어 10월 공식적으로 결별했다.
GM과 결별을 계기로 대우의 세계화 전략이 추진된다. 대우는 94년 영국 워딩기술연구소를 인수하고 「르망」의 외관만 고친 「씨에로」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인도·중국·루마니아·폴란드·우즈베키스탄에 합작 공장을 잇따라 세웠다.
그리고 96년 「라노스」, 97년 「누비라」, 「레간자」을 필두로 국내외 자동차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98년에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다.
그러나 대우차는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세계화 전략에 제동이 걸렸고 98년 2월 GM과 다시 자동차분야에서 전략적 제휴를 추진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이후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태를 거듭하다가 99년 8월 다시 전략적 제휴 논의를 본격화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다시 맺기도 했다.
그리고 포드에 한차례 고배를 마셨던 GM은 다시 대우차를 향해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필요에 의해 대우차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했던 GM이 인연의 끊을 다시 잡기 위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