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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팀 쿡이 사령탑을 맡은 이후 애플은 뒷걸음질 치기는 커녕 고속성장을 구가했다. 2018년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달성한 애플은 2년 만에 ‘꿈의 시총’ 2조 달러(한화 약 2381조원)마저 넘어섰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기업 아람코 이후 두 번째자 미국 기업으로서는 최초다. 잡스가 떠나고 9년 만에 애플의 시가총액은 5배 넘게 늘었다. 한국 증시에 상장된 2365개 회사 시총을 모두 합쳐도 애플 하나에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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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와 팀 쿡은 여러 면에서 다르다. 위기대처가 대표적이다. 위기상황에서 잡스는 정면돌파를 선택하는 반면 팀 쿡은 우회로를 찾는다.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팀 쿡은 힐러리 클리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누구보다 앞서 축하 전화를 걸었다.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종종 저녁 식사와 골프 라운딩을 함께하며 친분을 다졌다. 팀 쿡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선포하며 중국산 제품에 관세폭탄을 떨어트리자 “삼성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며 직접 전화해 하소연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협상 진전을 이유로 12월 15일 예정한 관세 부과를 철회함에 따라 애플의 중국산 휴대전화는 관세 영향권을 벗어나게 됐다.
‘주가 1달러’ 애플의 구원투수로
잡스가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라면, 팀 쿡은 관리형 리더라는 평가다. 팀 쿡이 합류하기 전 애플은 주가가 주당 1달러에도 미치지 못 하는 ‘동전주(동전으로도 살 수 있는 주식)’에 불과했다. 당시 팀 쿡은 경영관리 능력을 인정받아 IBM과 컴팩 등에서 본부장과 부사장을 역임한 인재였다. 팀 쿡은 “스티브 잡스와 만난 지 5분 만에 애플에 입사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창조적인 천재와 일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느껴졌다”고 돌이켰다.
1998년 애플에 합류한 팀 쿡은 가장 먼저 재고를 줄이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정확하게 수요를 예측한 뒤 과감하게 부품을 선결제했다. 그는 애플에 합류하자마자 새로운 아이맥을 출시할 때 1억 달러 상당의 부품을 수개월 전 미리 주문했다. 대량 구매로 단가를 낮춰 이윤은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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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생전에 ‘한 손에 들어오는 스마트폰’을 고집했다. 한 손으로도 조작하기 편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3.5인치를 유지해 오던 아이폰은 잡스의 사망 이후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005930)가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깬 대화면 갤럭시노트 시리즈로 성공을 거두자 애플도 이를 뒤따른 것이다. 후발주자인 삼성을 따라했다는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졌지만 그는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 우선이라는 소신을 꺾지 않았다.
팀 쿡의 애플은 ’한 손에 들어오는 스마트폰’을 대신해 ‘한 손에 들어오는 세상’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지난해 3월 신제품 발표회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폰에 아이클라우드와 애플뉴스 등 서비스를 추가해 콘텐츠를 아우르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비대면 활동의 비중이 커지며 애플이 제공하는 콘텐츠와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살아생전 잡스는 “팀 쿡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개발자가 아니”라고 했고, 팀 쿡 역시도 “그를 흉내 내지 않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했다. 잡스가 만들고 팀 쿡이 키운 애플이 시가총액 2조 달러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애플의 혁신이 제품이 아닌 관리의 혁신으로 진화한 데 따른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