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주년 빙그레 왕국 책임질 '빙그레우스', 12만 팬덤 비결은?

빙그레 미디어전략팀 조수아 차장·유화진 사원
빙그레우스 등장 이후 기업 SNS 팔로워 2만명 이상 늘어
솔직하게 제품 홍보하고 세계관 확장해 MZ 취향 저격
  • 등록 2020-04-20 오전 6:30:00

    수정 2020-04-20 오전 6:30:00

[이데일리 이성웅 기자] “빙그레 인스타그램 계정 해킹 당했나요?”

지난 2월 24일 빙그레 기업 인스타그램 계정에 정체 모를 셀피 사진이 올라오자 계정 팔로워들이 보인 반응이다.

빙그레 인스타그램 계정엔 불과 나흘 전까지 여느 기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처럼 신제품 출시 사진과 이벤트 안내 등이 올라왔다. 그러다 순정만화 속 왕자님 같은 캐릭터가 자신의 셀카와 ‘안녕?’이라는 단 한마디를 올렸으니 팔로워들이 당황할 만도 하다.

본인을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라고 소개한 이 캐릭터는 사실 빙그레가 만든 SNS 용 화자다. 첫 등장 이후 두 달 가까이 빙그레의 신제품을 백마 탄 왕자님 같은 말투로 소개하고 있다.

서울 중구 빙그레 본사에서 만난 빙그레 미디어전략팀 조수아 차장(오른쪽)과 유화진 사원이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캐릭터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빙그레)
지난 14일 서울 중구 빙그레 본사에서 빙그레우스를 탄생시킨 빙그레 미디어전략팀을 만나 빙그레우스 탄생 비화와 기업 홍보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등장 하루 만에 연달아 6장의 셀피를 올린 빙그레우스는 자신이 빙그레 왕국의 차기 왕위계승자라고 설명했다. 왕위계승자답게 빙그레 로고 모양의 귀걸이부터 ‘바나나맛우유’ 모양 왕관까지 온몸에 빙그레의 인기 제품을 액세서리로 두르고 있다.

빙그레우스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아버지로부터 인스타그램 채널 운영을 일임받았다”며 “6개월 뒤 팔로워 수 목표치를 채워야 왕위를 승계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엔 황당해하던 계정 팔로워들을 순식간에 팬으로 만든 비결은 이러한 상세한 설정과 스토리텔링이다.

빙그레우스를 기획한 조수아 미디어전략팀 차장은 “기업 SNS가 이제는 단순히 기업 공시사항이나 신제품 소식을 전하는 채널이 아니라 브랜드 마케팅의 중심이 돼가는 추세다”며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빙그레우스라는 화자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빙그레우스는 철저하게 SNS 주 이용층인 MZ세대(1980년대~2000년대초 출생자)를 겨냥한 캐릭터다. MZ세대가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MZ세대들은 ‘아이언맨’과 ‘헐크’ 등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경험하면서 하나의 세계관과 그에 따르는 구체적인 설정, 스토리텔링에 익숙해져 있다. 이를 의식해 빙그레우스 뿐만 아니라 ‘투게더’를 의인화한 ‘투게더고리 경’, ‘단호박 비비빅’을 의인화한 ‘비비빅’ 등 빙그레우스 주변 캐릭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빙그레우스를 함께 기획한 유화진 사원은 “대표제품들을 지속적으로 캐릭터화해 10종 이상까지 늘릴 예정이다”며 “인물 간 대결과 협력관계를 구축하면서 나중에 빙그레우스를 접한 소비자들도 첫 게시물부터 보고 싶게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왕자님 캐릭터가 대놓고 제품을 광고하는 점도 MZ세대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한 점이다.

유 사원은 이어 “MZ세대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솔직한 소통을 바란다고 분석했다”며 “예전에는 기업 계정인 걸 숨기고 좋은 문구나 예쁜 사진을 올리는 식으로 기업 이미지를 구축했다면 이제는 빙그레우스처럼 대놓고 제품을 두른다든가 제품 정보와 기업 소식에 대해 솔직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빙그레 본사에서 만난 빙그레 미디어전략팀 조수아 차장이 빙그레의 기업 이미지 변화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빙그레)
빙그레우스를 활용한 마케팅 전략은 적중했다. 아직 만으로 두 달이 채 안 지났지만, 그 사이 빙그레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는 2만5000명이 늘어 12만3000명이 넘었다. 제품이 아닌 캐릭터를 먼저 떠올리고 제품을 사먹게 됐다는 후기들도 나오고 있다.

빙그레우스를 탄생시킨 결정적인 이유는 빙그레의 기업 이미지를 좀 더 젊게 바꾸기 위해서다. 빙그레는 올해로 53주년을 맞은 장수기업인만큼 장수 브랜드도 많지만, 신선한 이미지는 아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개별 브랜드 단위에서 ‘B급 마케팅’을 시도하면서 변화를 꾀해왔다. 올해는 이를 기업 전체로 확대하는 차원에서 빙그레우스를 구상한 것.

조 차장은 “10년 전만 해도 이런 마케팅은 시도하기 어려웠으나 그동안 각각의 브랜드에서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하면서 굳은 살이 생겼다”며 “이제는 실무 담당자들이 직접 기획하고 집행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빙그레는 올해 빙그레우스 외에도 기업 이미지 변화에 지속적으로 공을 들일 계획이다.

유 사원은 “기업 브랜딩을 강화하기 위해 빙그레도 지속적으로 사회적 가치 창출에 투자하고 있다”며 “빙그레만의 재미있는 방식으로 고객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캠페인을 구상하고 있다”고 예고했다.

한편, 지난달 31일 빙그레는 해태아이스크림 지분 100%를 14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마케팅 담당자에겐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 차장은 “아직 인수 종료까진 많은 단계가 남아 있어서 이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론 빙그레우스가 왕위 계승을 할 때 즈음이면 해태에서 왕위 계승식에 축하단을 보내는 그림을 상상해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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