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싱키(핀란드)=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지난달 26일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은 의료정보의 2차 이용을 허용하는 `의료·사회 정보의 2차 이용에 관한 법률`을 인준했다. 이 법률에 따라 핀란드에선 관련 정보를 연구나 통계 등의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민감한 개인정보인 의료정보를 2차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한국 상황에서는 엄두도 내기 어렵다. 하지만 의료 데이터 활용이 세계적 수준인 핀란드에선 장기간에 걸쳐 의료 데이터를 축적하고 활용한 덕에 헬스케어산업이 커져 왔다. 현재 핀란드 헬스케어 산업규모는 연간 55억유로(원화 약 7조1200억원) 수준으로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4%를 차지한다. 인구 550만여명(2017·유로스타트)의 작은 국가지만 1950년대부터 쌓아온 의료 데이터를 정부 주도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
핀란드 정부는 지난 2007년부터 그동안 축적한 의료 데이터를 중앙화하는 칸타(Kanta)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핀란드어로 뿌리·근본이라는 뜻의 이 칸타는 핀란드 국민들이 자신의 의료기록을 온라인으로도 손쉽게 열람하도록 하고 처방전 갱신과 같은 비교적 간단한 진료는 원격으로 받을 수 있게끔 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핀란드가 헬스케어산업에 집중한 계기 중 하나는 고령화다. 의료비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데이터를 활용한 헬스케어산업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핀란드의 고령화는 세계적 수준으로, 오는 2040년이면 전체 인구의 27%가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일 것으로 예상된다. 카트리 마꼬넨 사회보건부 수석고문은 “핀란드에선 전체 인구는 크게 늘지 않는데 노인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며 “고령화에 대비하는 건 핀란드 정부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
고령화로 인한 복지 지출이라는 문제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은 핀란드처럼 의료 데이터 활용이 쉽지 않다. 개인정보 이용에 대한 민감한 인식과 각종 규제 때문이다. 핀란드 스타트업 뉴아이콘의 마르요 레티넨 최고보안책임자(CSO)는 “한국은 규제가 강해 제품 개발 시간이 길어진다”고 말했다.
최근엔 국내에서도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지난 3월 보건복지부는 올해 업무계획 등을 통해 바이오헬스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지역별 맞춤 보건복지서비스 제공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보건의료 빅데이터 특별법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핀란드 관계자들은 헬스케어산업 육성에 필요한 국민적 공감대를 위해선 신뢰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라 카렐라 핀란드 무역대표부 대표는 “핀란드에서 2013년에 처음으로 바이오뱅크법이 발효됐을 때 국민의 98%가 정보제공에 동의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며 “국민 신뢰가 혁신의 조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리 팔리요키 사회보건부 수석고문 역시 “헬스케어의 두 축은 의료인과 환자”라며 “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건강과 생활을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알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