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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처음에는 암에 걸렸다는 둥 2년밖에 못 산다는 둥 온갖 루머가 떠돌아다녔다. 나보고 미쳤느냐고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1990년 추계예술대에서 20여년 간 학생들을 가르치던 한국화가 이왈종(71)은 안식년을 맞아 홀연히 짐을 싸 제주도로 향했다. 경기 안성시에서 태어난 이 화백이 고향이 아닌 제주로 내려간 이유는 하나였다. 5년을 기한으로 오직 작품활동에 몰두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5년을 기약했던 제주생활은 이 화백의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아예 제주에 정착해 ‘제주생활의 중도’라는 주제로 26년간 한결같은 작업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후 이 화백은 2013년 제주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에 생존 화가로서는 드물게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개관했고 미술관은 제주의 명소가 됐다. 이 화백은 어느새 제주도를 대표하는 화가로 입지를 굳혔다.
△26년간 이어온 ‘제주생활의 중도’
이 화백이 4년 만에 서울 종로구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17일부터 6월 12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전시 제목은 변함없이 ‘제주생활의 중도(中道)’다. 이번 전시에는 회화는 물론 한지부조·목조각·도자기 등 작품 30여점이 나와 관람객의 눈길을 기다린다.
지난 12일 전시에 앞서 만난 이 화백은 “제주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 매화다. 엄동설한에 망울을 터뜨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사군자 중에 매화를 으뜸으로 쳤다”며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은 매화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고 말했다.
예전 작품에 비해 색채가 밝아지고 원색이 다소 줄었지만 한지 위에 언뜻 민화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그려내는 화풍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매화가 우거진 집에서 식구가 모여 함께 밥을 먹고 담소를 나누는 등 일상의 소소함과 행복이 묻어나는 풍경을 특유의 해학적이고 간결한 화법으로 담았다. 이 화백이 “인생살이와 닮았다”는 골프에 대한 애정 역시 변치 않아 작품의 절반가량은 골프장 풍경과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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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배경 150호 대작 다수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평균 3개월씩 작업해 그렸다는 가로 2m가 넘는 150호 대작들에선 이 화백의 노익장을 가늠할 수 있다. 회화 외에도 알록달록한 색채와 천진난만한 분위기의 도자·목각 등은 이채롭지만 친근하다. 이 화백은 “17년 전 건강했던 친구가 급성 뇌출혈로 급사했다”며 “당시 친구의 넋을 기리기 위해 향로를 구했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집에 가마를 차려놓고 직접 도자기를 굽기 시작해 이후 그림이 지겨울 때마다 종종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화백의 작품에선 작은 새와 꽃 등이 사람보다 크게 등장한다. 한라산 자락에서 뛰어다닌다는 노루는 사람이 사는 집과 크기가 비슷하다. 이 화백은 “만물은 똑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모두 동등하고 평등하다”며 “그래서 사람을 일부러 크게 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도’는 치우치지 않는 평상심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이 화백은 일상을 화려하게 치장해 재조명함으로써 우리가 쉽게 지나쳐버리는 하루하루 생활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며 “특히 이 화백의 유일한 취미인 골프를 소재로 한 작품에서는 골프를 통해 희로애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 생활의 축소판처럼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룬다”고 평했다.
“이제 1년밖에 못 산다는 생각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는 이 화백이 평생 몰입한 ‘중도’(中道)에 대한 철학이 궁금했다. 이 화백은 “중도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자연과 하나가 돼 집착을 버리고 무심의 경지에 이른 상태”라며 “거기선 주체나 객체가 따로 없고 크고 작은 분별도 없는 절대자유의 세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선과 악, 사랑과 증오, 분노와 절망 등 온갖 갈등에서 벗어나 평상심을 되찾고 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중도가 아니겠느냐”며 “평상심을 유지할 때만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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