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교사는 마법사인가

  • 등록 2013-08-16 오전 8:00:00

    수정 2013-08-16 오전 8:00:00

[염철현 고려사이버대 평생교육학과 교수]인도 영화 ‘블랙(Black)’을 봤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선천성 중증장애를 앓는 여자 아이와 교사의 이야기다. 영화는 제목에서 시사하는 것처럼 어둠 속에 갇혀 고통받는 아이(미셀)와 그녀를 밝은 빛으로 인도하는 헌신적인 교사
(사하이)가 만들어낸 인간 승리 스토리다. 픽션 소설이 아니라 실화라고 하니 감동이 더하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유형의 장애로 고통을 받고 있다. 미국만 해도 5400만 명의 장애인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은 숫자다. 많은 장애유형 중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처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 필자 역시 시각장애에 대해 특별한 연민을 갖고 있다. 장애인 중 우리나라 출신으로 미국 연방정부 차관보에 올라 장애인의 인권 신장을 위해 커다란 기여를 한 고 강영우 박사를 깊이 존경한다. 작년에 강 박사님의 부고 소식을 듣고 많이 울었다. 강 박사님은 중학생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망막을 다쳐 시력을 잃었다. 고인이 한 말 중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다.

“인간에겐 보는 것(sight)과 비전(vision)이 있는데, 육안의 시력은 눈에 들어오는 것만 보지만, 비전은 눈에 보이지 않은 더 높고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했다.”

그는 눈으로 보는 대신 마음으로 상상하고 시각화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되풀이해 미래를 보는 인생의 비전을 더 명확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시각장애라는 고난과 시련은 그가 더 큰 비전을 갖도록 단련시켰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미셀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 장애로 고통을 받았다. 부유한 그녀의 부모는 백방으로 미셀을 돕기 위해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부모는 미셀을 장애시설로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특수교사 사하이를 초빙해 맡긴다. 사하이 선생은 엄격함과 세심함을 갖추고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이고 극복할 수 있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교사다. 사하이 선생도 장애를 가진 누이를 잃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가진 인물이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미셀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대학에 입학한 뒤 낙제에 낙제를 거듭한 뒤 친구들은 4년 걸리는 졸업을 12년 만에 하는 장면이다. 미셀은 사하이 선생으로부터 강의 내용을 수화로 전달받으면서 대학 공부를 했다. 사하이 선생의 손가락은 강의실이든 집에서든 미셀에게 향해 있었는데, 그의 손가락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마법의 손처럼 보였다. 사하이 선생이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한 말이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자에게는 눈이며, 말 못하는 자에게는 목소리이며, 귀 먼 사람에게는 시다.” “저 아이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유일한 단어는 ‘불가능’이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했다. 무려 18년을 오직 미셀의 개인교사로서 헌신한 사하이 선생은 알츠하이머 기억 상실증에 걸린다.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 기회를 얻은 미셀은 장애인에게 졸업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졸업의 영광을 사하이 선생에게 돌린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사하이 선생은 미셀의 졸업조차 모른 채,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필자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교육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교육학에서 ‘교육’의 개념은 사람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며 내면에 잠재한 능력과 가능성을 계발시켜 준다는 뜻이다. 바다 밑의 뻘에서 진주를 캐내고, 땅속에서 보석을 발견해내는 일에 비유하면 어떨까 싶다. 나에게 사하이 선생은 내 자신을 진지하게 뒤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었다. 나는 과연 학생 모두를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한 끄집어내려고 했던가? 그들을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으로 대하고 있는가?

영화 끝 부분에 나의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대사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장님이고 귀머거리일 수밖에 없다.” 보는 것과 들리는 것만 믿으려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탓한 말일 것이다. 이 세상에 진짜 장님은 누구이고, 진짜 귀머거리는 누구인가? 고 강영우 박사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시력은 있지만 비전이 없는 사람이 진짜 장님이 아닐까. 교사는 결코 마법사가 아니다. 교사는 인간의 본래 자아를 최대한 확장시켜 마법처럼 변화시키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제2의 사하이와 셜리반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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