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위기의 시대 금융원로의 훈수는 "기본과 원칙"

이종휘 신복위원장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 강조
"위기 땐 위험관리가 최우선..차별화된 경쟁력 개발 필요"
"신복위는 금융 소외계층의 든든한 지원군..역할 더 확대"
  • 등록 2012-10-19 오전 8:21:56

    수정 2012-10-19 오전 8:21:56

[이데일리 김춘동 기자] “돈 버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금융분야에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일자리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2011년 3월 23일. 당시 이종휘 우리은행장은 퇴임을 하루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계획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말대로 금융 소외계층을 돕는 신용회복위원장에 취임했다.

이종휘 신용회복위원장은 한일은행에 입행해 41년간 은행에서 근무한 정통 뱅커이자 금융원로다. 전형적인 외유내강 형으로 꼽힌다. 얼핏 소탈하고 사람 좋은 동네 아저씨처럼 보이지만 기본과 원칙을 중요시하고 그만큼 뚝심도 강하다. 업무에서만큼은 어떤 꼼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은행장 시절엔 ‘온화한 카리스마’로 불렸다.

그러다 보니 줄곧 엘리트 코스를 걸으면서도 시련과 굴곡도 많았다. 결국 수석 부행장을 끝으로 우리은행을 떠나는 듯했지만, 절치부심 끝에 1년 만에 우리은행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2008년 6월 취임한 탓에 가시밭길의 연속이었지만 특유의 우직함으로 무사히 높은 파고를 헤쳐나올 수 있었다.

위기의 순간 소방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던 이 위원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그의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저금리, 저성장의 시대에 다시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금융권을 향해 그가 던진 화두는 ‘기본과 원칙’이다. “바둑을 두다가 수가 안 보이면 새로 둬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더디더라도 정도로 가다 보면 나중엔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 됩니다.” 그의 훈수는 단순하고 또 명쾌했다.

“위기의 시기엔 위험관리로 금융회사의 우열은 물론 존립 여부가 가려집니다. 그래서 개인과 기업에 대한 심사 및 평가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노련한 전문 뱅커답게 구체적인 전략도 잊지 않았다.

차별화된 경쟁력도 강조했다. “국내 은행은 백화점식으로 경쟁력이 고만고만합니다. 국민은행은 소매금융, 우리은행은 기업금융, 하나은행은 PB가 강하다고 하지만 규모의 차이일 뿐 상품이나 서비스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의 지적은 따끔하고 날카로웠다. 이젠 규모의 경쟁에서 벗어나 특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질적 경쟁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1+1은 2가 돼야 하는데 금융은 그 이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은행이 하나가 되면 크레디트라인(신용한도) 줄면서 고객이 먼저 불편해집니다.” 같은 연장선에서 메가뱅크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최근 금융권을 향한 탐욕 논란에 착잡한 심경을 표현했다. “예금과 대출금리는 일종의 가격인 만큼 당국이 직접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은 어려운 시기인 만큼 금융회사의 역할이 큽니다. 사회공헌 확대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는 만큼 균형점을 잘 찾아야 합니다.” 사회적 역할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고 위기를 오히려 반전의 기회로 활용하라는 조언이다.

신용회복위원장은 이 위원장에게 제2의 금융인생이다. 40년간 갈고 닦은 금융 노하우를 사회를 위해 베풀 기회이자 또한 사명이기도 하다. 그는 작년 4월 취임 후 때론 우직하게 때론 저돌적으로 신복위의 외연을 넓혀가면서 금융 소외계층의 재기를 돕는 든든한 후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예정에 없던 소액대출 재원 지원을 요청해 새롭게 500억원을 확보한 건 잘 알려진 일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법원에 개인회생이나 파산을 신청하기 전 사전 상담제도를 활성화하고, 일부 대부업 대출과 사채, 부동산대출 등 워크아웃에서 제외되는 채권을 최소화하면 그만큼 많은 이들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기존 신용회복 프로그램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이 위원장은 특히 법원으로 가기 전에 신복위의 사전 상담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찾아가는 재무상담서비스’를 도입해 신용회복 지원제도를 잘 알지 못하는 중소도시 서민들을 직접 챙기고, 이젠 국내 채무로 애로를 겪고 있는 해외 동포를 위한 채무상담도 계획하고 있다.

최근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추진 중인 프리 워크아웃(사전채무조정)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투 트랙’의 접근을 강조했다. “단독 채무자는 은행을 통해 연착륙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다중 채무자는 그 특성상 신복위가 맡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복위 주도로 개인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짤 때 채권은행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신복위가 올해로 열 돌을 맞았습니다. 대나무가 한 마디 한 마디 성장하는 것처럼 그동안 문제점을 잘 보완하고 인지도를 높이면 앞으로의 역할도 더 커질 것입니다.” 금융 소외계층이 마지막까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겠다는 그의 다짐엔 따뜻한 금융 역사를 써내려가는 그의 온화함이 그대로 묻어 있다.

→ 이종휘 신용회복위원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70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에 입행했다. 우리은행 경영기획본부장과 수석 부행장 등을 거쳐 2008년 6월부터 2년 9개월간 우리은행장을 역임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등이 대학 동기다. 취미는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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