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도 남북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남측은 악화일로를 겪고 있는 남북관계에 어느 정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대북 관계에서 또 다시 우리측만 소외되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여론을 감안했을 수 있다. 일단 이번 만남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북한은 현 정부 출범 이후 6.15, 10.4선언 이행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미온적 입장과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 발전을 연계한 `비핵·개방 3000 구상` 등을 문제삼으며 일방적인 대남공세를 펴왔고, 이에 대해 우리측은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사실상 무대응으로 맞서왔다.
◇ 북, 조문정국 이용 `관계개선 의지` 최대 표명
이 대통령은 김기남 단장 등 북한 조문단을 이날 오전 9시 30분경 청와대 본관에서 접견했다. 올해 상반기 김정일 국방위원장 수행 횟수에서 최다를 기록한 김기남 비서나 명실상부한 대남 실세이자 김 위원장 최측근인 김양건 부장이 이 대통령을 예방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청와대는 22일 북측 조문단의 면담 요청에 대해 일단은 `당일 면담`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의전상의 문제, 의제 설정 등 시간이 촉박하다는 게 일차적인 이유였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북측의 의도대로 휘둘린다`는 일각의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만남의 `특수성`과 상징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편, 북측은 체류 일정을 하루 연장해가면서까지 이 대통령을 기다렸다. 또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를 이 대통령에게 전달하며 "남과 북이 협력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 `진정성`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북측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이번 조문정국을 통해 최대한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5월 제2차 핵실험 등 일방적인 대남공세를 펴오던 북한은 7월 이후 특별한 `도발`없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숨고르기 국면으로 돌입했다.
◇ 남북간 시각차 해소까지 갈 길 멀어
앞으로 중요한 건 이번 만남을 계기로 양측이 어떻게 의지를 담아 관계 정상화를 위한 이행에 나서느냐에 있다.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 외교적 고립, 북미 관계정상화의 필요조건 등의 이유로 남측과의 관계개선이 절실한 상태다. 특히 유엔 대북결의안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간 수차례 약속한 비핵화 작업 재개 등을 통해 남측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 남측도 북미 대화 국면이 조성되는 듯한 지금 시점에서 어느 정도 북측과의 관계조정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남북간 본격대화 이전에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유엔 대북결의안 1874호 마련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가 하면 `비핵개방 3000` 등을 주장했던 우리 정부가 북측과 갑작스럽게 관계 개선을 시도한다면 국제사회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교수는 "남북 관계 개선이 북핵 문제를 견인해야 하는데 우리 정부는 북핵 문제 진전에 따라 남북 관계 개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이 입장을 계속 견지한다면 남북관계 정상화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북한이 강조하는 `6.15, 10.4선언' 존중 및 이행이 중요한 문제"라며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 조율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따라서 이번 상징성 있는 대화에도 불구하고 향후 남북간 입장차 해소에는 일정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