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한국발 게이밍 열풍과 냄비 속 개구리 韓 PC산업

배틀그라운드 등 한국이 일으킨 게이밍 붐
亞 PC업계는 발빠르게 게이밍 제품 출시
제조업 기반 약한 한국 업계 국내서만 1위
  • 등록 2018-06-09 오전 8:00:00

    수정 2018-06-09 오전 8:00:00

대만 타이베이에서 지난 5일부터 오는 9일까지 열리고 있는 아시아 최대 ICT 전시회 ‘컴퓨텍스 2018’ 현장 모습.
[글·사진=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전 세계 어딜 가도 우리 회사를 다 아는데 한국에서만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우리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내 역할 중 하나다”.

대만 타이베이에서 지난 5일부터 열리고 있는 아시아 최대 ICT 전시회 ‘컴퓨텍스 2018’에서 만난 제이슨 우 에이수스코리아 지사장은 한국 시장에서의 어려움을 이렇게 말했다. 실제 한국 내수시장에서 삼성전자(005930)LG전자(066570) 등의 노트북PC 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그러나 글로벌시장에선 국내 양대 전자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한자릿 대에 그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선 약세인 HP·레노버·델·에이수스·애플·에이서 등 6대 PC제조사의 전 세계 노트북 시장 점유율 90%에 육박하고 있다. 한국은 사실상 PC 분야에선 글로벌시장과 따로 움직이는 ‘갈라파고스 섬’인 셈이다.

문제는 한국의 이런 독특한 시장 환경으로 인해 국내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의 트렌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해, 자칫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냄비 속 개구리’ 신세에 처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현재 글로벌 PC시장은 ‘배틀그라운드’로 대표되는 전 세계적인 한국 게임 열풍 속에서 고성능·고사양을 요구하는 게이밍 제품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번 컴퓨텍스에서도 중화권 주요 업체인 에이수스나 에이서, 레노버 등은 발빠르게 게이밍 신제품을 출시하며, 신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게이밍 시장 선점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국내업체의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게이밍 노트북 등을 출시했지만 걸음마 단계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에선 한국의 제조업 기반 붕괴가 삼성·LG 등 양대 전자업체를 제외한 경쟁력 있는 중견 PC업체를 사실상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한때 불야성을 이루던 용산 전자상가는 생기를 잃은 지 오래고, 글로벌시장에서 인지도가 있는 한국 PC업체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에 비해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불렸던 대만은 탄탄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여전히 PC 업체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또 강한 제조업 기반은 양질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가격 경쟁력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대만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으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세계 1위 TSMC나 애플의 아이폰 생산으로 유명한 폭스콘(Foxconn) 등도 제조업 기반으로 성장한 글로벌 기업들이다. 대만의 PC업체들은 이런 제조업 경쟁력을 무기로 모바일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에이수스가 최근 선보인 최신형 AI(인공지능) 스마트폰 ‘젠폰5’는 글로벌 판매 가격이 400달러(약 42만원)선으로 한국 제품의 반값도 되지 않는다.

중화권 업체들은 이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시장 규모가 크지만 갈라파고스로 남아있는 한국에 주목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조건인 ‘현지 제품에 뒤지지 않는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이미 갖췄다고 판단하고 있다. 여기에 그들이 브랜드 인지도까지 확보한다면 우리 업체들이 안방까지 내주는 날이 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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