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분홍색 좌석 아닌가요?'…외국인은 모르는 지하철 임산부석

관광객 절반이상 지하철 이용하지만 한글 안내문만 존재
관광객들 "최소한 영어로 된 안내문 있어야 이해 가능"
서울교통공사 "서울시와 협의해 외국어 안내문 추가 고려"
  • 등록 2018-05-21 오전 6:30:00

    수정 2018-05-21 오전 6:30:00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당고개행 열차에서 한 중국인 관광객이 임산부석에 앉아 있다.(사진=조해영 기자)
[이데일리 이슬기 조해영 기자] “여기가 임산부 배려석(임산부석)이라고요? 몰랐어요. 일어날게요.”

서울 지하철 4호선 전동차 내 임산부석에 앉아 있던 중국인 관광객 류신(Liu Xin·28)씨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자가 “이 좌석이 임산부를 위한 전용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묻자 류씨는 당황해 했다. 류씨는 “이 좌석만 분홍색이라서 어떤 좌석인지 궁금했지만 한글로 된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만약 영어나 중국어로 된 안내문이 있었다면 이 자리에 앉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어 안내문 없는 임산부석…외국인들 “몰랐다” 당황

서울 지하철내에 마려된 임산부석을 외국인 관광객들이 차지하고 앉았다가 시민들의 눈총을 받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본의 아니게 배려없는 외국인이 된 이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임산부석 안내문이 한글로만 돼 있어 몰랐다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임산부석에 최소한 영어 안내문이라도 배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2013년 서울 지하철 1~8호선 열차에 한 칸당 2석씩 총 7100석의 임산부석을 마련했다. 당시 임산부석에 대한 안내문은 한글로만 만들었다. 2015년 서울시가 임산부석을 강조하기 위해 좌석과 좌석 바닥에 분홍색 스티커를 붙이는 등 디자인을 바꿨지만 안내문은 여전히 한글 뿐이다. 좌석 위에 임산부를 상징하는 그림이 있지만 이를 보고 외국인들이 임산부석이라는 걸 알아채기는 어렵다.

특히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명동역이나 이태원 일대를 지나는 전동차에선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 외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만난 프랑스인 에머리크(Aymeric·30)씨는 “디자인이 독특한 좌석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임산부석이라는 것은 몰랐다”며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외국어로 된 안내문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에서 만난 중국인 장이(Zhang Yi·35)씨도 “다른 자리도 비었는데 임산부석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앉았을 뿐”이라며 “임산부석이었다는 걸 알았으면 그냥 다른 빈 자리에 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외선순환 열차에서 한 중국인 관광객이 임산부석에 앉아 있다.(사진=조해영 기자)
서울교통공사 “개선 요구 많으면 외국어 안내문 추가”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절반 이상이 지하철을 주요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지난해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6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486명(58.1%)이 지하철을 가장 주요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했다고 응답했다. 택시를 이용한 사람이 1794명(29.9%)로 그 뒤를 이었다. 버스를 이용했다고 답한 사람은 462명(7.7%)에 불과했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은 매년 1000만명을 웃돌고 있다. 지난해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약 1051만명이다. 2016년에는 1357만명, 2015년에는 1041만명이 서울을 찾았다.

지하철 임산부석을 관리하고 있는 서울교통공사는 외국어 안내문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디자인 변경을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임산부석 디자인은 애초 서울시가 했기 때문에 산하 기관인 우리가 디자인을 바꾸려면 서울시와 협의가 필요하다”면서도 “임산부석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의견이 많으면 이를 반영해 외국어 안내문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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