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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구직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한 시중은행에 입사한 김모(28)씨는 2년만에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 졸업까지 미루며 2년 가까이 시험 준비에 매달린 끝에 어렵게 취직했지만, 막상 입사 후에는 평소 꿈꿔 온 ‘워라밸’은커녕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김씨는 “주말이면 지점 근처에서 열리는 행사장을 찾아가 주민들에게 애플리케이션 설치를 부탁하고 아침시간에 지하철역 입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도 했다”며 “이런 일을 하려고 은행에 입사한 게 아닌데 라는 생각에 사직을 결심했다. 좀 쉬면서 생각도 정리할 겸 여행이라도 다녀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군대식 문화·과도한 실적 경쟁에 “퇴사하겠습니다”
취업준비생 15~29세 청년실업률이 10%에 육박하며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통계상 잡히는 취업준비생만 70만명에 육박한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어렵게 바늘구멍을 뚫은 신입사원들이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가고 있다. 상명하복식 조직 문화에 실적 압박 등 치열한 경쟁에 짓눌려 어렵게 구한 회사를 탈출하는 것이다. 최악 취업난에 적성, 소질 등을 무시한 ‘묻지마 취업’이 낳은 부작용이란 지적도 나온다.
몇 년간의 직장 생활 기간 모은 돈으로 여행을 즐기거나,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이런 2030세대를 ‘갓수’라고 부른다. ‘갓수’란 신을 뜻하는 영어 ‘God’에 백수를 합친 말로, 이런 젊은이들을 ‘신과 같은 백수’에 비유한다.
지난해 경기 수원시 한 중소기업에 취직을 했다가 3개월 만에 사직서를 낸 한모(29)씨는 “욕설도 서슴지 않는 군대식 사내 문화는 물론이고 직무와 관련 없는 영업을 지시하는 걸 보고 안 되겠다 싶어 그만뒀다”며 “평소 관심 있던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며 적성을 살릴 회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나 급여, 근무여건 면에서 더 나은 곳을 물색하기도 하지만 ‘스펙’을 끌어올리기 위해 로스쿨 등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기도 한다.
3년간 대기업에서 일하다 최근 로스쿨 진학을 이유로 사직한 최모(32)씨는 “급여나 복지는 나쁘지 않았지만 지방근무인 탓에 어려움이 많았다. 로스쿨 진학이 목표지만 만일 실패한다고 해도 서울지역에서 직장을 알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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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38)씨는 갓수 1세대다. 대학 졸업후 취업준비를 하다 여의치 않자 대학원에 진학해 휴학기간 포함 4년을 학교에서 보냈다. 졸업후에 다시 취업준비생을 돌아갔지만 합격한 곳에 출근조차 안했다. 이씨는 부유한 부모님의 지원 덕에 지금도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영위한다
졸업 후 3년째 취업 준비 중인 이모(30)씨는 “실력만 있으면 어디든 붙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해진 인원을 선발하는 구조에선 불합격자는 나올 수밖에 없다”며 “‘적성에 안 맞는다는 이유 등으로 박차고 나온 자리는 다른 누군가가 간절히 원했던 기회”라고 꼬집었다.
대학 졸업반 주모(25·여)씨는 “ ‘갓수’란 말 자체가 직장을 그만 둔다해도 경제적 형편이 괜찮기 때문 아니냐”며 “과외 등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를 병행해야 하는 형편에서 이들의 고민에 그다지 공감하지는 못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