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기도 싫고 갈 수도 없다”…빚에 억눌린 '청춘'

  • 등록 2015-09-27 오전 7:51:00

    수정 2015-09-27 오후 4:18:59

지난 26일 서울 시청 광장에 집에 가기 싫은, 혹은 가지 못하는 청년들이 함께 모여 한가위를 보내자는 ‘한가위 한(恨)마당’이 열리고 있다. 빚이라고 적혀있는 종이기둥 안에는 실제 학생들이 보유한 대출금을 상징하는 종이수표들이 들어있다. [사진 =정다슬 기자 ]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26일 서울시청 광장 한 귀퉁이에 2미터 높이 종이 탑이 세워졌다. 그 안에 들어 있는 100만원짜리 수표가 붙은 종이뭉치는 성공회대 학생들이 약 20일간 학교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대출금만큼 넣어달라고 모은 것이다. 지금까지 모인 대출금만 1억 6000만원이 넘어섰다. ‘집에 가기도 싫고, 갈 수도 없는 청춘들이 모여서 나름대로 즐겨보자’라는 취지로 열린 ‘한가위 한(恨)마당’의 풍경이다.

행사를 기획한 팟캐스트 ‘절망라디오’ DJ 김성일 씨는 “빚만은 지지 않겠다고 생각하더라도 휴대폰 요금, 월세 등이 하나둘 밀리고 내가 아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게 되면 어느 순간 대출을 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며 “대학진학률이 80%(2014년 기준으론 70.9%)가 넘는데 이 80%가 모두 대학등록금과 생활비 등을 감당할 수 있는 집안의 자제들이 아닌 만큼 대출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빚은 더는 청년층에게 낯선 존재가 아니게 됐다. 한국장학재단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 공개한 자료를 보면 한국장학재단에서 학자금 대출이 시행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총 412만명이 대출을 받았으며 대출금액은 14조여원이다. 이 중 6개월 이상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가압류·소송·강제집행 등의 법적 조치를 받은 학생들은 1만 5000여명에 달한다.

학자금 대출 외에도 생활비 등의 명목으로 대학생들이 은행권에서 받은 대출도 1조원이 넘는다. 금융감독원이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제출한 ‘은행권 대학생 대출현황’에 따르면 지난 7월말 기준 16개 은행에서 대학생·대학원생들은 6만 6375건, 1조 839억원 대출을 받았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이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1금융권에서 밀려 2금융권으로 가는 순간 대부분 이자가 20%대로 훌쩍 뛰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김영환 새정치연합 의원에게 제출한 신용대출 연령별 현황을 보면 20대들이 저축은행, 캐피탈·카드사, 보험사, 대부업체 등 2금융권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금액은 6월말 기준 2조 4000억원이다. 이중 대부업 대출이 9000억원에 달한다.

안정된 소득원이 없는 대학생, 취업준비생들이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자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고 이 높은 금리가 다시 자금 사정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연체가 장기화하는 순간 한 개인의 신용에는 상당 기간 ‘주홍글씨’가 새겨져, 취업 등 사회활동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을 소지가 크다. 현재 10만원 이상을 5일 이상 연체하면 연체자로 등록돼 신용등급에 불이익을 준다. 아울러 90일 이상 연체한 이는 ‘불량채무자’가 돼 빚을 갚은 후에도 5년 동안 금융거래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만약 연체기간이 90일을 넘지 않으면 3년, 30만원 미만 90일 이상 소액연체는 채무 상환 후에도 1년 동안 기록이 남는다.

26일 한가위 한마당 행사에 참여한 청년들이 송편을 빚고 있다. 사진 = 절망라디오 페이스 북
이런 상황에서 한가위는 사치라는 것이 청년들의 하소연이다. 행사에 참여한 김우용(22) 씨는 “‘내가 사망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쓰고 종이를 몸에 붙인 뒤 바닥에 드러눕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취직이 안 되는 문과라서 기본소득을 못 받아서 20대 후반인데 취업은 못하고 학자금 대출만 늘어나서 등 경제적인 이유가 많았다”며 “집에 가봤자 너는 왜 취업 안 하니 누구는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는데 가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에서 자금조달이 어려운 대학생·청년들을 위한 정부는 △미소금융재단과 신용회복위원회의 ‘생계자금대출’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고금리 채무를 저금리 대출로 전환해주는 ‘전환대출’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채무감면 및 취업 시까지 채무상환을 유예하는 ‘채무조정’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소금융재단의 생계자금 대출은 지난 3년 동안 50억원 정도만 대출이 이뤄졌고 신복위의 전환대출 역시 740억원 정도로 급증하는 청년 자금 수요를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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