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서울 중상위권 대학 졸업 예정인 이모 씨는 취업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을 맛봤다. 수십군데 기업에 원서를 냈지만 서류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학점, 토익, 인턴 경력 등 스펙은 모자랄 게 없었다. 주변에서 자기소개서가 문제란 말에 이 씨는 최근 글쓰기에 매달리고 있다.
바야흐로 글쓰기 열풍이다.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을 뜻하는 작가와 독자의 경계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터넷 블로그 등에는 일반인들의 맛깔나는 글들이 넘쳐난다. 글쓰기 능력이 곧 스펙으로 불리면서 관련 서적이나 학원을 찾는 이들까지 늘었다.
▲10대 문학소녀부터 60대 노신사까지 북새통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5층 세미나실.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문학박사이자 ‘로쟈’라는 필명의 서평가로 유명한 이현우 작가가 ‘독서와 서평 쓰기’라는 주제로 독자와 만났다. 10대 문학소녀부터 대학생, 중년 남녀는 물론 60대 노신사까지 빼곡이 좌석을 채웠다. 도서관 측이 마련한 60개의 좌석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복도에 보조의자를 놓을 정도였다. 나른한 오후시간이었지만 이 작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며 꼼꼼하게 메모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글쓰기는 실용적인 수요가 크다. 대학 진학은 물론 취업과 직장에서의 승진을 위해서도 필수가 됐다. 인문학 바람과 더불어 SNS 상에는 힐링 차원의 글쓰기도 유행이다. 글쓰기 능력이 곧 권력인 시대가 된 것. 이 때문에 ‘회장님의 글쓰기’(메디치미디어), ‘힘 있는 글쓰기’(토트),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퍼플카우) 등 다양한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대학이나 문화센터, 사설학원에는 글쓰기 비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글쓰기 기본은 독서…한국 독서현실은 암울”
|
다만 독서현실은 암울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이 작가는 “최근 지방의 한 고등학교에서 ‘독서의 즐거움’이라는 특강을 진행했는데 절반이 졸더라”며 “1시간 30분 강연인데 겨우 1시간을 버티다 내려왔다”고 토로했다.
실제 청소년은 공부, 스마트폰, TV, 게임 등으로 독서에 필요한 절대시간을 빼앗긴다. 청소년기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대학생은 고액 등록금에 아르바이트 전선에 내몰려 책 읽기가 힘들다고 하고, 사회로 나와 취업을 한다 해도 바쁜 직장생활에 책 한 권 맘 편히 읽을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결국 독서에 필요한 여유는 대개 중년 이후에도 찾아오는 구조라는 뜻이다.
이 작가는 “앞으로 독서현실을 그다지 낙관하기 어렵지만 포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독서전망이 불투명해도 희망을 걸어야 하고 이를 띄우려는 사회적 분위기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