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고 왕따시키고” 직장 내 괴롭힘 얼마나 심각하길래

직장인 10명 중 9명 "왕따 경험 있다"
욕설·차별대우·불가능한 업무 지시 등 행태도 다양
한정애 의원, 직장내 괴롭힘 방지 위한 근기법 개정안 발의
  • 등록 2013-10-10 오전 7:43:57

    수정 2013-10-10 오전 8:37:51

[이데일리 유재희 기자] .대형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김경민(29)씨. 그는 아침에 눈을 뜨는 게 괴롭다. 출근과 동시에 이어지는 직장 상사의 욕설과 인격 모독성 발언 때문이다. 직장 상사는 업무를 지시한 후 얼마 지나지도 않아 “아직도 마무리 못했냐? 초등학생보다 못한 새끼. XX놈아 빨리 끝내”라며 욕설을 퍼붓는다. 김씨는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근무했던 정은영(여·42)씨. 그는 입사 1년 만에 차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하는 등 회사에서 꽤 인정받은 인재였다. 그러나 직속 상사가 바뀌면서 정씨의 회사 생활이 꼬이기 시작했다. 상사는 정씨의 담당 업무가 아닌 일까지 떠맡기기 시작했다. 정씨가 이를 거부하자 대기 발령을 내는 등 사실상 퇴직을 강요했다. 정씨가 이를 노동위원회에 제소하자, 회사는 정씨의 사무실 출입 ID카드를 박탈하고, 책상만 있는 빈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게 했다. 정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통받는 근로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직장 상사가 특정 직원에게만 과중하거나 불가능한 업무를 지시하거나, 부하 직원들이 모의해 특정 상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소외시키는 등 피해자와 가해자의 행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최근 국내 직장인 2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9명(86.6%)은 따돌림을 한 번 이상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4.1%는 지속적인 따돌림을 당했다. 또 취업포털사이트 사람인이 직장인 97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29.1%가 “직장 내 왕따(집단 따돌림)가 있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은 ▲따돌림 ▲부당한 비판 ▲타당성 없는 비난 ▲다른 동료들과 차별적 대우 ▲욕하기 ▲소리를 지르거나 창피를 주는 일 ▲과도한 업무 모니터링 등 신체·물리적 폭력보다는 언어·심리적 폭력 형태를 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서유정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조직원이 아니고서는 눈치채지 못할 만큼 교묘하게 이뤄지다 보니 피해 직원 혼자서 끙끙 앓다가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직장내 따돌림과 언어 폭력을 못견뎌 자살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4월 전남 담양군에서는 “직장 동료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너무 힘들다”며 30대 여성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현재 많은 유럽연합 국가와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직장 내 집단 괴롭힘을 방지하는 법이 제정·시행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최근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것을 확인하면 행위자에 대해 징계 조치를 하도록 했다. 아울러 직장 내 괴롭힘으로 피해를 본 근로자 또는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근로자에게 해고 등 불리한 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과)는 “어른 왕따 문제는 아동 왕따보다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피해자가 그 사실을 감추려는 경향이 있어 내버려두면 자살 등 극단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며 “직장 내 괴롭힘과 언어 폭력은 개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회사 업무의 효율성도 떨어뜨리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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