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성진 기자] 세계 1위 아연 제련업체 고려아연(010130)을 두고 벌이는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집안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집안의 지분전쟁이 다소 혼란스러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최씨 가문은 종중 자금까지 동원하며 고려아연 지분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최근 경영권을 쥔 그룹 계열사에는 장 고문을 이사회 구성원으로 재추천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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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정밀, 장형진 고문 이사 재추천..극한 갈등 피하나
지난 9일 최씨 일가가 최대주주로 있는 영풍정밀은 임기 종료를 앞둔 장형진 고문을 기타비상무이사 후보로 재추천한다고 공시했다. 오는 23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장 고문의 선임 안건이 가결된다면 장 고문은 무려 21번이나 연임을 하게 된다.
74년 동업의 영풍그룹은 그동안 ‘한 지붕 두 가족’ 형태의 경영을 이어왔다. 장씨 일가는 비철금속 업체 영풍과 기타 전자계열사를, 최씨 일가는 고려아연과 그 계열사를 책임지는 식이었다. 두 가문은 서로 경영하는 회사의 지분을 일부 소유하거나 이사회에 참여해 견제와 균형을 이뤄왔다. 최씨 일가가 지배하는 산업용펌프 제조업체 영풍정밀 이사회에 장 고문이 1983년부터 참여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영풍정밀 이사회가 장 고문을 재선임하기로 결정한 것은 극단적인 갈등은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관측된다. 최씨 가문이 현재 장씨 가문과 전례 없는 지분전쟁을 벌이고는 있다지만, 굳이 갈등을 극한으로 밀어붙일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일단 그냥 넘어가자는 분위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영풍정밀 이사회는 현재 사내이사 2명, 기타비상무이사 1명, 사외이사 3명 등 총 6명의 인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장 고문 외에는 장씨 일가 측 인물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없는 것으로 관측된다. 최씨 일가 입장에서는 장 고문이 이사회에 속해 있더라도 지분경쟁을 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최씨 일가는 영풍정밀을 활용해 고려아연 지분을 확대하는 전략을 취했다. 영풍정밀은 지난해 본격적으로 보유 현금을 활용해 고려아연 지분을 매집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1.56%에 고정돼 있던 영풍정밀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1.92%까지 확대됐다. 동시에 최씨 일가는 영풍정밀 지배력 강화에도 나섰다. 영풍정밀을 경영하는 최창규 회장은 지난 1월 시장에서 영풍정밀 주식 4만957주를 사들여 지분율을 4.86%로 늘렸다.
‘국민연금·외국인·소액주주’ 잡아라..주가부양 카드 만지작
영풍정밀의 장 고문 이사회 재선임과는 별개로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의 지분 확대 및 경영권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고려아연이 액면분할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제기한다. 주가를 부양해 국민연금(8.28%), 외국인(22%), 소액주주 등을 자신 편으로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주가 부양은 현재 고려아연을 경영하는 최씨 일가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다. 최씨 일가가 장씨 일가보다 더 뛰어난 경영능력을 보유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바로 주가와 실적이기 때문이다.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율은 각각 32.4%, 28.3%로 4% 포인트 수준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사실상 캐스팅 보트인 국민연금, 외국인, 소액주주들이 누굴 지지하느냐가 핵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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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고려아연 지분전쟁의 서막은 지난해 최씨 일가가 우호세력을 확보하면서 시작됐다. 백기사로 여겨지는 한화그룹은 지난해 8월 고려아연 지분 5%를 확보하며 주요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고려아연은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6.02%를 LG화학, ㈜한화 등과 교환했다. 최씨 일가 측에서는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넘겨 우호 지분을 확보한 것이다. 적절한 파트너만 나타난다면 같은 방법을 또 쓸 가능성도 충분하다.
재계 관계자는 “최씨 일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싸움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의 지지가 필수”라며 “이를 이끌어내기 위해 액면분할, 자사주 매입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