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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남성이라면 군대에서 한 번쯤은 차봤을 저렴하지만 튼튼한 전자시계의 양대 산맥 ‘돌핀’(DOLPHIN)과 ‘카시오’(CASIO)는 요즘 ‘멋 좀 아는’ MZ세대 사이에서 패션시계가 되기도 한다. 예전이라면 인생에 한 번 고가 예물 시계로 큰맘 먹고 지르는 대중적 명품 시계의 대명사 ‘롤렉스’(ROLEX)와 ‘오메가’(OMEGA)는 젊은 세대의 ‘플렉스’(Flex·재력 과시) 소비문화와 만나 요즘 없어서 못 사고 심지어 중고 리셀(re-sell·되팔기)로 웃돈까지 붙을 정도다.(이보다 윗급인 초고가 하이엔드 명품 시계와 리미티드 에디션은 말할 것도 없다.)
싼 맛에 내 취향껏 차는 패션 시계와, 비싸지만 웃돈을 줘서라도 자기만족을 위해 손에 넣는 명품 시계. 그렇게 양분된 시계 시장에 갑자기 등장한 ‘별종’으로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예로부터 시계로 유명한 스위스의 스와치그룹 산하 브랜드 오메가와 스와치(Swatch)가 처음 협업해 선보인 ‘문스와치’(MoonSwatch)가 주인공이다.
이렇듯 문스와치가 양쪽 수요를 모두 흡수하면서 ‘품절템’이 된 데에는 먼저 ‘고가 명품’과 ‘중저가 패션’ 사이 벽을 허물고 손잡은 과감한 시도가 꼽힌다. 기본적으로 문스와치는 중저가 패션 시계 브랜드로 유명한 스와치가 만든 패션 시계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하지만 명품 시계 브랜드 오메가의 ‘부내’(부티) 나는 디자인과 이미지를 입었다.
문스와치는 1969년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딛을 때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이 착용해 일명 ‘문워치’로 불리는 오메가의 인기 모델 ‘스피드마스터’(Speedmaste)를 오마주(hommage·존경의 모방)했다. 비슷한 디자인에 시계판에 떡하니 ‘OMEGA’ 로고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판매 가격은 33만1000원으로, 600만~700만원대 오메가 문워치 대비 약 20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다.
스와치가 문스와치를 꾸준히 생산·공급한다고 공지했듯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이 아닌데도 각종 중고거래 커뮤니티에서 정가 대비 2~3배 이상 가격으로 사고 싶다는 글과, 많게는 580만원에 되판다는 거래글이 이어지고 있다. 남들보다 먼저 손에 넣고 과시하고 싶은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스와치에서 출시한 의도대로 문스와치는 어디까지나 데일리 패션 시계다. 디자인과 브랜드 이미지가 주는 ‘후광’이 분명 있지만 적정 가격선 또한 있다. 디자인과 브랜드 이미지 뿐만 아니라 시계의 근간인 무브먼트에 집약된 기술 등 다양한 요소의 완성도 모여 하나의 명품 시계를 만든다. 시장 논리에 따라 제조·판매사가 책정한 판매가는 이러한 값어치를 반영한다. 하지만 ‘선 넘는’ 일부 리셀 가격과 행위는 건전한 시장의 기능을 교란시킬 수 있다. 합리적 경제 주체라면 이성적 판단으로 정도를 지킬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