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17년 만에 진실 캐는 동생…'노란빛 복수' 다뤘죠"

장편소설 '레몬' 출간
죽음 다룬 미스터리한 이야기
"보편적 불행 통해 치유 얻기도"
'사람 사는 일' 계속해서 쓰고파
  • 등록 2019-05-14 오전 7:27:58

    수정 2019-05-14 오전 8:37:12

권여선 작가는 “상실의 고통은 긍정적인 면에서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계기를 만들고, 부정적인 면에서는 증오에 불타서 타인을 고통에 빠트리는 복수를 불러온다”고 말했다(사진=창비).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한동안 ‘권여선’ 하면 술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소문난 ‘애주가’인 그녀는 작품마다 항상 술 마시는 장면을 등장시켰다. 애처로운 술꾼들의 이야기를 묶은 동인문학상 수상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2016)도 냈다.

권여선(54) 작가는 1996년 제2회 상상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그간 5권의 소설집을 냈고 이상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으며 주목받는 여성작가로 떠올랐다. 최근 출간한 네번째 장편소설 ‘레몬’(창비)은 2016년 문예지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를 개작한 작품이다. 권 작가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13일 이데일리와의 서면인터뷰에서 권 작가는 “죽음을 다룬 미스터리한 소설을 한번 쓰고 싶다는 마음과 깊은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아픔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며 “두 마음이 합쳐지면서 ‘레몬’이 탄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죽음의 여파와 극복에 관해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2002년 여름, 미모의 여고생 해언이 공원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해언이 마지막으로 목격됐을 당시 타고 있던 차의 운전자인 신정준과 차에 탄 해언의 모습을 목격했던 한만우가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책은 언니가 살해된 후 17년이 지나 복수에 나선 동생 다언의 이야기를 통해 애도하지 못한 죽음의 여파와 불행에 빠진 인간의 내면,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세상을 살면서 상실의 고통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왜 나에게 하필’이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다언도 용의자들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다가 불행하게 사는 한만우와 가족을 보며 자기의 아픔만이 절대적으로 크고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다. 세상엔 더 큰 아픔과 보편적인 불행이 만연하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비로소 언니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언은 ‘복수로 인한 죄는 평생 내가 받겠다’는 식의 자기처벌 방식으로 복수를 하는데, 나름의 ‘윤리적인 복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보통 복수 하면 핏빛 ‘붉은색’을 떠올리지만 다언의 복수는 ‘노란색’ 레몬이다. 해언이 발견됐을 당시 입고 있었던 노란 원피스를 비롯해 작품에서는 끊임없이 노랑의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노란 리본’과 세월호가 오버랩되는 이유다.

“노란색의 의미는 복수로 고정돼 있다기보다 소설 안에서 계속 바뀐다. 처음엔 레몬 과자처럼 밝고 명랑한 것에서 비극을 환기시키는 언니의 원피스 빛깔로 바뀌었다가 복수를 다짐하는 빛깔로, 다시 계란프라이와 참외에서 치유의 빛으로 변한다. 책을 내면서 제목을 노란빛을 떠올리게 만드는 ‘레몬’으로 바꿨는데, 그 발음 또한 ‘리본’과 비슷해서다.”

누구를 범인으로 만들지 고민하는 경찰 등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도 나온다. “부조리한 사건은 우리를 분노와 무력감, 나아가 깊은 우울에 빠트린다. 이러한 우울함의 가장 큰 이유는 이해할 수 없음에 있다. 무엇이 잘못돼서 이런 해괴한 일들이 발생하는지 명확히 밝혀지면 최소한 시스템 속에서 해결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각자의 일상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 거다. 너무 많은 부조리가 우리 사회를 점점 사납게, 자포자기하게 만들어왔다.”

△“사람 사는 일에 관심 많아”

누구에게나 ‘죽음’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다. 권 작가 역시 스물두살 때 친한 친구가 죽은 사건은 큰 충격으로 남아있다.

“가장 젊었을 때 겪은 죽음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대학 내내 같이 지내다시피 했던 친구가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해 부끄럽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너무 마음이 아팠고 가까이에서 나는 무엇을 했나 자책도 심했다. 첫 소설 ‘푸르른 틈새’가 그 친구 이야기를 하고 싶어 쓴 것인데, 내가 소설가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도 술을 벗삼아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도 사람들 이야기를 써 나갈 계획이다. “술이 좋아서 어쩔 수가 없다. 하하. 다만 조금씩 여유를 두려고 하고 양도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사람 사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저런 상상을 하다 보면 소설이 써진다. 앞으로도 눈과 귀와 마음과 언어를 갈고 닦으며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쓸 수 있을 때까지.”

권여선 작가(사진=창비).
권여선 작가(사진=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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