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족쇄' 압박에…금감원은 '고립무원'

홍남기 "3급이상 35% 수준까지 감축" 압박
"방법 찾아보겠지만…" 당혹스러운 금감원
방어의지 떨어진 금융위‥"길들이기" 눈길도
  • 등록 2019-01-24 오전 6:00:00

    수정 2019-01-24 오전 6:00:00

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금융검찰’ 금융감독원이 관료 틈바구니에 끼어 ‘고립무원’에 놓였다. 감사원 감사로 시작된 압박은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재지정 논의로 이어지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금융감독의 독립성마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올 정도다. 과거 외풍(外風) 방패막 역할을 해줬던 금융위원회는 되레 상황을 방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홍남기 “3급 이상 35%까지 줄여야” 압박

23일 기획재정부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기재부는 이달 말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논의를 앞두고 금감원을 거칠게 몰아세우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 2017년 9월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명분으로 2009년 공공기관에서 해제된 금감원의 공공기관 재지정을 논의 중이다. 작년에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했으나 국회 정무위원회와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가 금융감독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위축된다며 반대하자 채용비리 근절대책과 감사원 지적사항에 대한 개선 등을 조건으로 결론을 1년간 유보했다.

올해 기재부가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감사원이 지적한 인력 감축분야다. 감사원은 당시 기관운영감사에서 “상위 직급의 인력 규모를 금융 공공기관 수준으로 감축”하라고 권고했다. 금감원은 10년간 3급 이상 직원을 35% 수준까지 줄이겠다는 자구계획을 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금감원이 3급이상 직원을 35% 수준까지 줄이려는 의지를 보여야 국민적 공감대·수용도가 높아지지 않겠나 생각한다”며 압박강도를 높였고 기재부 관계자도 “감축 기간이 5년 정도는 돼야 금감원이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라며 거들었다.

현재 금감원의 3급 이상 직원은 전제 직원의 43%(851명) 수준이다. 기재부는 앞으로 5년간 690여명(35%) 수준으로 줄이라는 것이다.

당혹스런 금감원‥윤석헌 “쉽지 않지만 방법 찾아보겠다”

금감원은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기존 자구안도 자연감소 인력과 승진 최소화 등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결과인데 이른 시간내 인력비중을 낮추라는 압박을 받고 있어서다. 현재 민간기관으로 재취업이 봉쇄됐고 명예퇴직 제도도 없는 상황에서 정년이 보장된 직원을 줄이려면 젊은 직원의 승진 길이 막힌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쉽지는 않지만 필요한 조건이라면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기재부가 고도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필요한 금융감독업무의 특성을 외면한 채 일률적 잣대로 인력을 줄이라고 압박하다가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비자보호와 종합검사를 강화하려면 조직을 강화해야 하고 핀테크(금융+기술)를 포함한 검사 수요가 꾸준히 늘어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영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작년 대부업체와 밴(VAN)사가 금감원의 감독기관으로 편입되면서 작년 4500곳 이던 검사 기관이 200곳 이상 늘었다.

금감원은 행정권을 위임받아 금융회사들을 관리·감독하는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직원의 신분은 공무원이 아닌 ‘반민반관(半官半民)’ 조직이다. 다른 정부기관과 견줘 독립적이면서도 탄력적인 조직운영이 가능한 구조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지 않더라도 이미 금융위의 통제를 받으며 국회와 감사원의 감시를 받고 있다. 기재부가 독립성이 침해된다는 이유로 공공기관에서 해지해놓고 다시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것도 모순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보호와 감독기능을 갖고 있는 금감원은 지금도 정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는데 공공기관이 되면 이런 현상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독립된 기구가 감독기능을 수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수방관하는 금융위‥“이참에 길들이려는 것” 해석도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금융위가 수수방관만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일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윤석헌 원장 취임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와 종합검사 부활, 예산문제를 놓고 대립각을 나타냈다. 최근에는 금감원 부원장 인사를 놓고도 이견 차를 보여가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금융위는 공식적으론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반대 의견을 냈지만 최근 금감원과 갈등이 계속되면서 과거보단 방어 의지가 떨어졌다는 평가다.

실제 작년 공운위가 열리기 전부터 금융위 관료들이 물밑에서 기재부 등 관련부처를 설득하는 작업을 펼쳤고 작년 1월말 열린 공운위에서는 금융위 고위인사가 직접 참석해 금융감독기구의 자율성 침해와 공공기관 지정의 비효율성을 명쾌한 논리로 설명해 1년간 지정을 유보하는 방안을 끌어내기도 했다.

금융위가 올해 소극적으로 대응하자 일부에서는 상황을 방관하며 이참에 길들이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시 금융위가 정말 디펜스(방어)를 잘 해줬다”면서 “올해도 그런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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