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회계 공시하면 주69시간제 추진?…尹정부 노동개혁 전략은

진퇴양난에 빠진 주 최대 69시간제
노조 회계 공시,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
근로시간 설문조사로 노동개혁 관심 끌기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 재구축 가능성도
  • 등록 2023-10-28 오전 8:30:00

    수정 2023-10-28 오전 8:30:00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올해 초 주 최대 69시간제라 불리며 큰 논란을 일으켰던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내달 공개될 전망이다. 양대노총의 회계 공시 동참을 노동개혁의 동력으로 삼고, 주 최대 69시간제를 다시 추진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내년 상반기까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전략을 미리 엿보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회계 공시 시스템 개통 관련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진퇴양난에 빠진 주 최대 69시간제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6일 ‘주’ 단위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 다양화하는 내용의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을 발표했다. 11시간 연속휴식권 보장시 1주 최대 69시간, 휴식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최대 64시간을 근무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일이 많을 때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몰아서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푹 쉴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지만, 과로와 장시간 노동을 조장할 것이라며 비판이 잇따랐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개편안에 대한 재검토 지시를 내렸다.

현재 고용부는 6000명 규모의 설문조사를 마무리하고 조사 결과를 내달 17일 이전에 발표할 계획이다. 설문조사는 현행 근로시간 제도에 대한 평가와 문제점, 개선 방향 등 세 가지를 중점에 두고 국민과 노사의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는 전문가들이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주 최대 69시간제는 백지화가 쉽지 않다. 전문가로 구성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약 6개월 동안의 논의 끝에 만들어진 권고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개편안이기 때문이다. 개편안에 공을 들인 만큼, 백지화 선언은 사실상 주52시간제 유연화에 대한 포기선언과 다를 바가 없다는 평가가 다수다.

그러나 주 최대 69시간제는 재추진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개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 양대노총과 관계가 경색되면서, 노동계와 협의하는 과정도 거의 없었다. 이에 이미 여론의 큰 반발을 사며 부정적 인식이 박힌 개편안을 큰 변화 없이 다시 추진해 성과를 내긴 한계가 있다.

노조 회계 공시,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

정부는 최근 양대노총이 회계 공시에 참여하기로 한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지난 23일 한국노총에 이어 24일 민주노총까지 회계 공시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노사법치를 기반으로 노사관계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동개혁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대노총이 회계 공시에 동참한 것으로 노동개혁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사실 정부 입장에서 노동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선택할 방법은 애초에 별로 없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권은 교체됐지만, 국회는 야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총선 전인 내년 상반기까지 법과 제도개선을 추진하기엔 어려움이 있었고, 성과를 내기도 불가능했다.

특히 법제도 개선의 전제로서 노동계와의 협의도 어려웠다. 노사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정부에 대항해 노동계는 야당과 연대해서 노동개혁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노사정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선 이미 유일한 노동계 대화 상대인 한국노총이 6월부터 대화에 불참하면서 기능을 상실하기도 했다.

7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역 인근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연 금속노조 총파업대회에서 양경수 위원장 (앞줄 가운데)과 조합원들이 노동 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근로시간 설문조사로 노동개혁 관심 끌기

이에 정부는 성과를 낼 수 없는 법제도 개선 대신 노사 법치주의에 집중하고 있다. 노동개혁을 내걸고 지속적인 성과를 낼 수 없으면, 국민의 관심과 지지가 식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국민의 지지가 눈에 보이면, 노동계가 반대해도 노동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뒀다. 노사 법치주의에 집중하면서 지속적인 성과를 내고, 국민적 지지를 얻으려는 전략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주 최대 69시간제는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발표 이후 추가적인 제도개편안을 마련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설문조사 결과를 활용해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왜 필요한지,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 등 공론화에 집중하며 공감대를 구축해나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주 최대 69시간제 논란을 겪으며, 정부는 제도개편 과정에서 노사협의가 필수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근로시간 제도개편안도 방향성만 제시할 뿐 구체적인 개편내용이 담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주도하면 노사정 협의를 통한 공론화는 어려워지고, 국회에서 여소야대로 법 개정도 되기 어렵기 때문에 국민적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정부는 제도개선의 방향성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개편방안은 노사정 협의를 거쳐 결정한다는 입장을 강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면 노사정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공론화가 가능해진다는 전략이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 재구축 가능성도

그렇다면 노사협의는 어떻게 이뤄질까. 현재 노사정 기구인 경사노위에서 협의가 이뤄지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현재 구조상 노사 일방이 불참하면, 사회적대화 기능이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 합의가 원칙이기 때문에 노사 어느 한 쪽이 반대하면 개혁방안을 도출하기도 불가능하다.

이에 노동개혁을 위한 새로운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를 만들 가능성도 있다. 특히 최저임금위원회처럼, 공익위원이 중심이 되고 노사정 대표가 참여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꼽힌다. 공익 전문가들이 협의를 주도하고, 노사정 합의가 되지 않아도 공익 전문가들이 권고안을 제시하는 식이다.

한 노동계 전문가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 활성화를 위해서는 노사정 모두 의제제안권을 갖도록하고, 논의의제 채택은 노사정이 합의하도록 해서 원활한 사회적 대화가 진행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향후 노사정 사회적 대화틀은 실질적인 정책협의와 공론화에 초점 맞춰 재구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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