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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은 지난 2018년 우리 정부가 국민연금에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넣어 피해를 입었다며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중재판정부는 정부에 배상원금과 지연이자 등을 더해 총 1300억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법무부는 ‘소수주주는 자신의 의결권 행사를 이유로 다른 소수주주에게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상법상 대원칙에 따라 국민연금이 합병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한 것을 엘리엇의 투자에 대한 조치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국민연금을 ‘사실상의 국가기관’으로 규정한 것도 잘못이라고 봤다. 한미 FTA에선 ‘사실상의 국가기관’이란 개념이 없어서 이를 근거로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미국 정부가 제출한 의견서에서 “한미 FTA상 당국의 조치로 인정되는 ‘당국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비정부기관의 조치’에는 ‘그 기관이 위임받은 정부 성격의 권한 범위를 벗어난 행위’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힌 점을 근거로 댔다.
한 장관은 “공공기관 등이 소수주주로서 주주총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한 사안에서 국가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은 ISDS 사건은 찾기 어렵다”며 “정부가 취소 소송을 제기해 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향후 우리 공공기관 및 공적 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부당한 ISDS 제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불복절차에 나선 이유를 부연했다.
법무부는 취소 소송과 별개로 판정문상 오류에 대해서도 정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중재판정부는 엘리엇이 입은 손해액을 산정하기 위해 삼성물산이 합병 후에 엘리엇 측에 지급한 합의금을 ‘세전 금액’으로 공제해야 한다고 판시했지만, 실제 계산은 합의금의 ‘세후 금액’을 공제해 손해배상금 원금이 약 60억원 증가한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취소 소송 과정에서 적잖은 법률 자문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한 장관은 “국민 혈세를 최대한 절약하면서도 정해진 (소송)시스템 안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정부의 방침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소 엇갈렸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법 대원칙에 근거해 승소할 가능성이 약간이라도 있다고 판단되면 소송에 나서는 것이 맞다”며 “승소 가능성이 있는데도 이를 포기하면 차후 국가가 직무를 유기하고 배임을 저질렀다는 논란이 제기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송기호 법무법인 수륜아시아 대표변호사는 “현실적으로 취소 판결 승소율이 낮은 상황에서 구상권 청구를 포기한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며 “소송 전략을 논하기 이전에 어느 방안이 국익에 부합하고 더 합리적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