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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일제로부터 지키기 위해 숨겨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와 해례로 나뉜다. 예의는 세종대왕이 직접 한글을 만든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국어 시간에 외웠던 “나라말싸미 듕귁에 달아…”라는 구절이 담긴 글이 바로 ‘예의본’이다. 해례본은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례를 설명한 한글 해설서다. 예컨대 “초성은 중성의 위에 놓이거나 왼쪽에 놓이는데, ‘군’의 ㄱ이 ㅜ 위에 있다” 등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해례본은 지난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문화재 수집가였던 ‘간송’(澗松) 전형필(1962년 작고)이 처음 발견했다. 간송은 일제가 한글의 가치를 깎아내리기 위해 해례본을 없애려 한다는 걸 알고는 수소문 끝에 찾아내 사재 1만원을 털어 사들였다. 당시로서는 기와집 10채 값에 맞먹는 큰 돈이었다. 그후 간송은 일제의 눈을 피해 해례본을 16년간 꼭꼭 숨겼다. 그리곤 1956년 해례본을 세상에 내놨다. 지금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로 칭송받는 것은 모두 간송 덕이다.
배씨, 턱도 없는 욕심에 1000억 달라 생떼
며칠 전 배씨는 문화재청의 서적 회수 강제집행을 막아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이 판결로 상주본 소유권자인 문화재청이 강제집행에 나설 수 있게 됐지만, 배씨는 여전히 떵떵거리며 ‘버티기’ 중이다. 되레 문화재청이 배씨 눈치를 살피고 있다. 괜시리 배씨를 자극해 책이 훼손될까봐 걱정이다.
배씨는 착각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해례본은 정상 거래가 불가능한 은닉 문화재로, 경제적 값어치는 1조원이 아니라 ‘0원’이 맞다. 그런데도 1000억원 보상은 누가봐도 무리한 요구다. 문화재청도 좀 더 확실한 협상안으로 배씨를 설득해야 한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직접 나서 대안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와 별개로 문화재 회수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절차 마련도 고민해 볼 때가 됐다. ‘제 2의 배익기’는 감당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