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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결혼은 잔인해요. 우리 여자들의 삶을 산산조각 내고 있잖아요.”
15년 만에 집에 돌아온 노라는 더 이상 예전의 노라가 아니다. 노라를 반갑게 맞았던 유모 앤 마리도 “결혼 제도는 사라져야 한다”는 노라의 말에 어찌할 줄 모른다. 그동안 노라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왜 지긋지긋했던 집으로 다시 돌아온 걸까.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인형의 집 파트2’는 의외의 재미로 똘똘 뭉친 작품이다. 고전 희곡을 모티브로 한다는 사전 정보로 공연 분위기가 진지하고 무겁고 지루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편견이었다. 등장인물은 단 4명. 무대 위엔 2명의 배우들만 나오지만 100분간 펼쳐지는 치열한 설전은 ‘말의 재미’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느끼게 했다.
노르웨이 극작가 헨릭 입센이 1879년 발표한 ‘인형의 집’은 결혼한 여성이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가정을 버린다는 파격적인 결말로 연극사에 한 획을 새겼다. 집을 떠나면서 막을 내렸던 노라의 이야기는 미국 작가 루카스 네이스의 상상력을 통해 15년 뒤의 이야기를 그린 ‘인형의 집 파트2’로 새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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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무대 위에 덩그러니 놓인 커다란 문과 의자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다소 휑해 보이는 무대를 채우는 것은 배우들. 노라가 문을 열면서 막을 올리는 공연은 노라가 유모 앤 마리, 남편 토르발트, 딸 에미와 만나면서 벌이는 대화를 중심으로 극을 풀어간다.
노라가 집에 다시 돌아온 이유는 자신이 아직까지 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상태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체적인 여성에 대한 글을 쓰며 작가로 성공한 노라는 남편 토르발트에게 이혼을 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집에서 결혼제도가 여전히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극의 재미는 15년의 공백이 만든 인물간의 서로 다른 입장 차이에서 생겨난다. 개막 전 인터뷰를 통해 출연 배우들이 밝힌 것처럼 ‘인형의 집 파트2’에 등장하는 인물들에는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 나름의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친다. 관객 또한 관객 각자의 입장으로 인물들을 바라보고 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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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파트2’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결혼제도의 문제,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이해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네 명의 인물이 아주 잠깐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 다시 멀어지는 모습은 인간 관계의 어려움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헨릭 입센이 쓴 ‘인형의 집’의 정서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노라의 마지막 결정은 ‘인형의 집’과 같은 쾌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루카스 네이스 연출은 “‘인형의 집’이 발표됐던 당시 논란이 됐던 모든 것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이슈들이다”라며 “‘인형의 집 파트2’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변했고 얼마나 변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남녀라는 존재의 평등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우 서이숙·우미화가 노라 역을, 손종학·박호산이 토르발트 역을 번갈아 맡는다. 앤 마리 역은 전국향, 에미 역은 이경미가 연기한다. 공연은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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