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연예인은 왜 공시대상이 아닌가

  • 등록 2019-03-27 오전 6:10:00

    수정 2019-03-27 오전 6:10:00

‘버닝썬 사태’의 중심에 서 있는 그룹 빅뱅의 승리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2000년대 초반, 노래방만 가면 불렀던 애창곡 중 하나가 바로 가수 보아의 ‘넘버원’이었다. 당시 보아는 글로벌 스타였다. 2001년 일본에 진출한 후 음반판매액과 CF 출연료 등으로 1000억원 넘게 벌어들였다. 우리나라 자동차 평균 수출단가가 9000달러 수준이었으니 자동차 8800여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 돈을 10대 소녀 혼자 벌어들인 것이다.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으로 불릴 만했다.

재능 있는 소녀가 어느 순간 짠 하고 데뷔한 게 아니었다. SM은 기획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보아를 키웠다. 그녀가 초등학생 때 SM에 연습생으로 들어가자마자 소속사에서 춤과 노래보다 일본어를 먼저 가르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기업형으로 발돋움한 것 역시 이맘때쯤이다.

이렇게 성장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잇달아 코스닥시장을 노크했다. 2000년 4월 SM이 코스닥 상장 첫 테이프를 끊었고 2011년 JYP엔터테인먼트가 코스닥 상장사인 제이튠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우회상장한데 이어 같은 해에 YG엔터테인먼트도 직상장에 성공했다. 바야흐로 연예기획사 상장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기업공개를 통해 공신력을 갖추고 증시를 통한 직접 자금조달이 수월해진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은 성장가도를 달렸다. 2000년 상장 당시 140억원에 불과했던 SM의 매출액은 지난해 6122억원으로 44배가량 늘었고 JYP와 YG도 각각 2800억원대, 12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컸다.

스타 양성에 대한 충분한 투자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될성부른 떡잎을 발굴해 철저한 교육과 훈련으로 스타의 자질을 갖추게 하고 음반 기획과 제작을 거쳐 데뷔시키기까지 회사 입장에서는 투자다. 데뷔 이후 유명세를 타면서부터 투자에 대한 수익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잘 키운 연예인 한 명 탄생하면 열 기업 안 부러운 회사의 자산이 되겠지만, 동시에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이기도 하다. 최근 빅뱅의 승리가 연루된 버닝썬 게이트가 대표적이다. 단순한 폭행사건인 줄 알았던 버닝썬 사태는 경찰과의 유착, 마약과 성매매 알선, 동영상 불법 유포, 상습 탈세 의혹 등으로 이어지면서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주가가 동반 급락하면서 주주들의 피해는 특히 극심했다. 이 사태가 기업의 펀더멘털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가늠이 돼야 주식을 팔지, 보유할지를 결정할 텐데 사업보고서를 뜯어보고 공시를 뒤져봐도 도통 계약관계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가 없다. 주주들은 YG엔터테인먼트가 승리와 계약을 해지했다는 소식을 공시가 아닌 언론보도를 통해 접해야 했고, 승리와의 계약금액이나 계약조건은 깜깜이였다.

엔터테인먼트 업체에 있어서 소속 연예인이 자산이고 주요 수익원이라면 이들과의 계약관계에 대한 공시의무도 부여하는 게 맞다. 공급계약을 체결하면 공시하고, 중도에 계약조건이 변경되면 정정공시를 하는 다른 상장사들처럼 말이다. 개인과의 계약인데다 영업기밀이기도 하고 유명 스타와의 계약은 조건이 복잡해 일일이 공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의 항변이지만, 이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주주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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