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외딴 곳에서 내뿜는 퇴계의 향기

  • 등록 2017-12-13 오전 6:00:00

    수정 2017-12-13 오전 6:00:00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꽃향기는 천 리를 가고 사람의 덕은 만년을 간다(花香千里行 人德萬年薰)’는 이야기는 우리 귀에 제법 익숙하다. 필자는 사람의 덕, 즉 인품이 오래오래 간다는 이 글귀가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따금 체험하곤 한다. 최근 남도의 퇴계유적지를 다녀와서 느낀 소회도 그중 하나이다.

1533년 이른 봄 33세의 퇴계는 고향 예안(현 경북 안동)을 떠나 수백 리 남도 여행에 나선다. 바로 한 해 전 곤양(현 경남 사천) 군수인 관포(灌圃) 어득강(魚得江, 1470~1550)으로부터 초대 편지를 받은 것이 계기였다. 31살 아래인데다 아직 벼슬길에도 안 오른 시골선비를 관포가 직접 초대한 것은 글재주와 덕망을 들은 바 있어 나이를 뛰어넘는 친교를 맺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잔설을 밟으며 집을 나서 퇴계는 상주, 선산, 성주를 거쳐 의령 처가에 잠시 머물다가 진주를 지나 한 달여 만에 봄이 완연한 곤양 땅에 도착하여 초청자의 영접을 받았다. 이어 다음날에는 남쪽 10리쯤에 있는 작도(鵲島, 까치섬)로 가 생선회를 앞에 두고 조석(潮汐)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섬 남쪽으로 양편에 산이 솟아있는데 그 사이로 밀물이 들면 주변을 빙 둘러 바다가 되고, 썰물이 나면 갯벌이 되었다. 내륙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현상을 접하고 퇴계는 그 감회를 곧바로 시로 남겼다.

작도는 작은데 손바닥처럼 평평하고 鵲島平如掌

오산은 멀리 마주하여 우뚝하구나 鰲山遠對尊

하루아침 동안에도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니 終朝深莫測

예부터 이치란 궁구하기 어려운 것 自古理難原

숨 한 번 쉴 사이에 땅이 포구가 되고 呼吸地爲口

조수 들락날락하는 곳에 산은 문이 되네 往來山作門

고금의 많은 주장 가운데서 古今多少說

결국 누구의 말이 정곡을 찌를 것인가 破的竟誰言

태양과 달의 인력이 조석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대였던지라, 퇴계는 처음 접하는 자연현상에 대해 솔직하게 그 이치를 알지 못하겠다며 겸허함을 보인 것이다. 이날 모임에는 지역 선비 몇 사람도 함께했는데,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들 또한 퇴계의 학식과 인품에서 많은 느낌을 받았으리라.

400년의 세월이 흐른 1928년 봄, 지방 유림들이 퇴계가 시를 짓던 바로 그 자리에 작도정사(鵲島精舍)를 건립했다. 퇴계의 위패를 모시고 기리기 위한 공간이다. 여러모로 살기 힘들었던 식민지시기에 바닷가 유림들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 일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퇴계 종손이 지은 정사 건립 기문은 그들이 퇴계의 학덕을 숭모했기 때문임을 전해준다. 이후 10년 뒤인 1938년 일제가 주변 바다를 매립하여 작도를 육지 속 작은 동산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그 후에도 곤양향교 주도로 정사의 관리와 추모의 예는 끊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 달 중순, 퇴계학을 공부하는 도산서원 참공부 모임 학자 십여 명과 함께 작도정사를 답사하였다. 이른 오전 시간인데도 향교와 정사를 관리하는 유림들이 다과를 차려놓고 환대해주었다. 며칠 전에는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 퇴계선생의 선비정신을 보급하는 ‘찾아가는 학교 선비수련 활동’을 작도정사 인근 사천 서포초등학교에서 진행하였다. 활동을 마친 후 참가했던 선비수련원 지도위원들이 귀로에 작도정사에 들러 선생의 향기를 맡았음은 물론이다. 모두 그 옛날 70평생 살아가면서 늘 사람됨의 도리를 실천하였던 퇴계선생이 남긴 덕의 향기가 아직도 미치고 있는 결과가 아니겠는가? 우리도 퇴계처럼 살아가야 하는 까닭을 말해주는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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