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잠실동 한 아파트로 이사한 회사원 김모(47)씨의 말이다. 김씨는 서울 성북동에 있는 전용면적 114㎡짜리 아파트에 월세(보증금 1억원, 월 임대료 180만원)로 살다가 지난해 11월 잠실동 전용 84㎡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사한 아파트 역시 준전세(반전세)로 보증금 4억 8000만원에 월세 60만원을 내야 하지만 임대료 부담이 예전 집보다 크게 줄었다. 김씨는 전세자금대출로 빌린 2억원을 보태 보증금을 마련했다. 대출 상환기간은 10년, 금리 3.3%를 적용받아 한 달 이자 비용은 55만원이다. 여기에 월세 비용까지 합치면 115만원이 매월 주거 비용으로 나가지만 이전 집에 살 때보다 65만원을 아낄 수 있다. 김씨는 “월 지출 비용이 줄어 요즘 생활하는 데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전세의 월세 전환이 빨라지면서 월세 물량이 넘쳐나자 월세 세입자 구하기가 힘들어진 집주인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임대료(월세)를 내리고 있다. 특히 준전세(보증부 월세) 공급 과잉에 따른 거래 움직임도 대폭 줄자 세입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월세를 낮추는 대신 보증금을 높이는 임대인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보증금은 오르고 월세는 낮아진 준전세 물건들이 시장에 속속 나오고 있다.
보증금은 오르고, 월세는 내리고
월세 세입자를 구하는 게 쉽지 않자 보증금을 올리는 대신 월세를 낮춰 거래를 성사시키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 이 같은 거래 형태는 재계약을 체결할 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전용 84㎡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안모(56)씨는 올해 초 보증금을 5000만원 올리는 대신 월세를 20만원 낮추는 조건으로 월세 재계약을 했다.
이렇다보니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 보증금은 오르고, 월셋값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감정원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 보증금은 작년 11월 1억 3416만원에서 지난달 1억 3519만원으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 반면 월셋값은 9월 평균 90만 8000원에서 지난달 90만 5000원으로 하락했다.
월세 수요자는 주거비 부담 덜어
아파트 월 임대료가 하락하는 것은 월세 물량 증가 외에도 부동산 시장이 비수기인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임대료가 비싸더라도 잘 팔리는 성수기(이사철)와 달리 겨울철 비수기에는 전월세 물건을 찾는 사람이 뜸하다”며 “공실(빈집)을 면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세입자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집주인들은 세입자의 눈높이에 맞춰 월세를 낮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월세가 떨어진다는 것은 세입자 입장에선 주거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 팀장은 “공급 물량이 많으면 가격은 떨어지게 마련”이라며 “집주인 입장에선 울상이겠지만 월세 수요자들에게는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