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아파트 원조 싱가포르 르포] 얻은 것과 잃은 것

국민 82%가 거주… 건물값만 내고 살아 年
수천억원 적자는 국가재정으로 메워
  • 등록 2006-12-19 오전 8:56:32

    수정 2006-12-20 오전 8:18:32

[조선일보 제공] 미국계 안약 제조업체 알콘(Alcon)의 직원 림기한(39)씨는 싱가포르 시내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퀸즈타운 단지에서 살고 있다. 28평짜리 공공아파트다. 싱가포르 정부가 제공하는 일종의 ‘반값 아파트’로, 시세는 1억7100만원(평당 610만7000원)쯤 한다.

그는 5년 전 이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현금 한 푼 들이지 않았다. 취직 후부터 납부한 중앙연금준비기금(CDF·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 저축금 2100만원과, 주택개발청(HDB)의 대출금 1억800만원(연2.6%·25년 만기)을 이용했다. 매달 내는 대출 상환금은 45만1800원. 300만원의 월급을 받는 그에게 큰 부담은 아니다.

▲ 마주 보는 공영과 민영 싱가포르 토아 페이오 거리의 HDB(주택개발청) 본사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단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왼쪽의 민영고급 아파트와 오른쪽 아래의 저층 공공아파트 단지가 나눠져 있다.
◆반값 아파트와 맞바꾼 정부 재정

하지만 아파트 질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보기에 누추하고, 엘리베이터도 매층 서지 않고 5층마다 한 번만 섰다. 화장실에 욕조도 없고, 빨래는 부엌 창문 밖으로 걸어서 말리고 있었다. 분양가를 낮추려 아파트 내부 마감에 가능한 한 돈을 아꼈기 때문이다.

부동산중개업체 KF의 스티브 탄 부장은 “입주자들이 인테리어와 내부 시설을 따로 자비(自費)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국민 82%가 림씨처럼 값싼 공공아파트(일명 HDB 아파트)에 살고 있다.

한국의 주공에 해당하는 주택개발청(HDB)이 개발해 공급하는 아파트다. 월소득(가구 합산) 480만원 이하면 누구나 공공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다. 이런 공공 아파트는 상류층 18%가 사는 민영 아파트 가격의 절반 이하다. 그 비결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HDB 관계자는 “HDB가 매년 수십억 싱가포르달러(한국 돈으로는 수천억원)의 적자를 감수하며 주택을 공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값 아파트의 대가로 거액의 적자를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HDB는 국유지를 보유한 도시재개발청(URA)으로부터 토지를 시장가격에 사들인 뒤 아파트 건물 값만 받고 분양하고 있다. 따라서 HDB는 매년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HDB 적자는 전부 국가 재정으로 메워진다. 지난해 정부 예산에서 주거복지에 지원된 금액은 6720억원(정부 예산의 3.8%)에 달했다.

싱가포르의 경제규모가 한국의 7분의 1쯤 하니까, 한국으로 치면 연간 5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내는 셈이다. HDB 관계자는 “HDB는 아파트 가격을 책정할 때 손익 개념을 따지지 않고, 싱가포르 국민의 70% 이상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 얼마인지를 우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적용은, 글쎄?

‘싱가포르 방식’은 한국에도 적용이 가능할까. 싱가포르에서 공공 아파트를 가장 많이 짓고 있는 건설업체 CES의 림탱추안(林鎭川) 사장은 “한국 정부가 얼마나 많은 토지(국유지)를 보유하고 있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1966년 토지수용법을 제정해 국토의 76%를 국유화했다. 반면 한국은 산이나 그린벨트를 빼면 국유지(2005년 말 현재 23.1%)가 많지 않다. 쌍용건설 서정호 싱가포르 법인장은 “한국이 싱가포르 식의 반값 아파트를 현실화하려면 토지 매입에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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