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강종구기자] 채권금리가 또다시 바닥찾기에 나섰다. 연초 국고채3년물 기준 4.5%까지 치솟았던 금리는 16일 3.6%대에 진입했다.
시장전문가들은 자신감에 차 있는 표정이다. 일부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3.6%대 금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13일 edaily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국고채 3년물 기준 3.60%를 전망하는 곳도 나왔다.
◇ 채권시장, 박총재 발언에 환호
콜금리를 6개월째 동결한 지난 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설명회에서 박승 총재가 입을 열면서 채권 매수세력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관망세는 매수세로, 소극적인 매수는 적극적인 매수로 돌아섰다.
박 총재의 이날 발언중 채권전문가들 뇌리에 박힌 문장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이 말들은 대부분 박 총재가 연초부터 여러차례 반복해 왔던 말이다. 1분기 성장률 전망치 수정을 빼고는 차이가 없다.
"내수가 살아나고 있지만 수출신장율 둔화를 상쇄하기는 아직 미흡한 상태다. 1분기중 경제성장률은 3%에 다소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회복은 하반기에나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가는 대체로 양호하다.
`당분간` 경기회복을 계속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박 총재는 이밖에도 채권시장이 반길만한 말을 몇마디 더 했다.
현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경기회복에 지장을 줄 것으로 본다거나 최근 채권시장에 큰 화두였던 한-미 금리 역전에 대해 자본유출을 걱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 대목 등이다.
이날 이후 일부 채권전문가들은 "경기회복에 대한 의심이 커졌다. 인하기대감이 다시 나올 수도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은행이 당분간 저금리 정책을 지속할 뜻을 `분명히` 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장기물 공급이 부족하던 터. 펀더멘털 우려까지 겹치며 장기금리 하락 기대가 커졌고 수익률곡선은 평평해지고 있다.
◇ 채권시장이 듣지 않은 말..조건부 낙관은 낙관이 아니다?
그러나 채권시장이 듣지 않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듣지 않을 것일 수도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 전망과 관련해 시장의 이해가 맞는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3% 안되는 성장률이 과연 그토록 열광할 만한 것이었는지..
박 총재는 "담배생산 감소가 경제성장률을 0.4%포인트 가량 끌어내리는 작용을 했다"고 말했다. 이는 2%대 성장률이 통계상의 수치일 뿐이라는 한은의 해석이다.
실제로 한은 관계자는 "담배생산 영향이 그렇게 클 줄 짐작치 못했다"며 "그것을 감안하면 1분기 성장률은 3%대 초반이 나온다"고 말했다. 박 총재도 이날 "1분기 성장률은 담배생산 요인을 감안하면 3% 성장이라고 봐도 좋다"고 했다.
2%대 성장률은 채권시장이 이미 예상했고 또 금리에도 어느정도 반영돼 있던 터였다. 그러나 한은과 채권시장의 이유는 달랐다. 그래도 채권시장은 한은이 2% 성장률을 확인했다며 고무됐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예상하는 것과 확인하는 것은 아무래도 느낌이 다르겠죠"라고 말했다.
채권시장은 2월 산업생산이 충격적인 7% 감소로 나왔을 때 성장률 하락을 직감했다. 그러나 한은 관계자는 "2월 산업생산은 조업일수 감소때문에 이미 예상했다. 그것때문에 성장률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한은의 상반기 성장률 전망치는 의심의 여지없이 하향조정됐다. 연초 한은 전망치는 3.4%, 박 총재가 이날 제시한 수치는 아래 위로 0.2%포인트 여유를 둔 3% 내외, 즉 2.8~3.2%다. 그러나 담배때문에 그 의미는 희석된다.
오히려 이날은 지난달보다 경기회복에 대한 한은의 눈높이가 더 높았다.
박 총재는 "2분기 성장률은 1분기보다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회복은 하반기에 가시화된다"고 말했다. 또 "소비와 설비투자등 내수증가세가 올라가기 때문에 내용면에서는 개선되는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 집행부의 경기판단이 종합된 `최근 국내외 경제동향` 보고서에는 낙관론이 더 분명하다.
소비는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앞으로도 회복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비투자는 미약하지만 회복세에 있고 하반기 이후에는 회복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진단이다. 건설경기는 바닥을 친 것으로 분석했고 서비스경기나 고용사정은 회복세이거나 개선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해석했다.
자금수요가 늘어나면서 금융기관의 여신활동은 `아직은 부진하지만` 개선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은은 지적했다. 하루전인 11일에는 기업대출과 가계대출은 모두 늘었고 주택경기가 10.29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는 설명도 했다.
한은 집행부는 "대외여건이 크게 악화되지 않는다면 2분기말 경기회복"이라고 적시했다. 박 총재가 이를 "하반기부터나"라고 바꿔 말했지만 2분기말이나 3분기초나 다를 것도 없다.
그러나 시장은 "그럼 대외변수가 악화되면?..."이라며 이를 일축했다. 조건부 낙관은 신중한 경고로 해석할 수도 있을텐데 시장은 낙관이 아니라는 논리로 대응했다.
"내수회복이 수출신장률 둔화를
아직 상쇄하지 못할 것"이란 박총재의 설명은 채권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까. 시장은 채권을 사란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금리가 자금수요와 자금공급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의미에서 볼때 과연 채권시장에 호재일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해까지는 수출호조와 외국인 주식자금 유입으로 해외에서 엄청난 통화증발 요인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이런 영향이 사라졌다. 거의 제로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통화량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전년동월비 통화량 증가율은 그저 그런 수준이지만 전기비로 보면 상승조짐이 눈에 보인다. 해외부문에서 통화가 터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 묻혀버린 경고, "부동산 거품엔 금리인상으로 대응" 시사
사실 5월 통화정책방향의 `백미`는 부동산 과열에 대한 경고였다. 박 총재는 자산가격 거품에 대해 금리인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또 올해초부터 장기간 조율을 거친 금통위의 공식 의견이기도 하다.
그간 자산가격 거품에 대해 한은의 입장은 정리가 돼 있지 않았다. 자산가격에 대해 콜금리로 대응해야 하는지, 대응한다고 했을 때 그 효과는 어느 정도나 있는지 자신도 없었다.
박 총재는 "부동산 가격과 같은 자산버블은 국가적 차원에서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게 금통위의 기본 입장이다. 또 이것은 정부의 기본입장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술 더 떠 "부동산문제가 중앙은행 통화신용정책 대상이 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못박았다. 김태동 금통위원도 다음날인 13일 한 라디오방송에 나와 "북핵문제 다음에 심각한 것이 부동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총재가 지난해말 저금리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부동산 거품이 다시 안 올줄 아느냐"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부동산 과열이 생기면 통화정책으로 대응한다고 총재가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한은이 생긴이래 처음이 아닌지..
한은의 이같은 위기의식은 강남 재건축단지의 투자과열이 단초를 제공했다. 그뿐이면 그냥 지나칠텐데 문제는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분명한 거품으로 한은은 보고 있다. 한은 설명에 따르면 재건축대상 아파트 10평규모가 5억~6억원을 호가하고 있단다.
한은 관계자는 "재건축하면 30평정도가 될텐데 건축비와 세금 등 이것 저것을 합치면 입주때까지 10억가까이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며 "다시 팔때 평당 3000만원 정도 나와야 하는데 지금 강남에서도 그정도 시세는 타워팰리스, 삼성동 I파크, 대치동 센트레빌 정도"라고 말했다. 재건축후 그정도 입지조건이 될 수 있느냐는 것.
그는 "재건축이 다되면 신천에서만 5000가구, 송파구에서 5만가구가 쏟아져 나온다. 수도권에서는 20만가구 정도로 알고 있다"며 "재건축후 그정도 시세가 되는 입지조건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은 관계자는 "강남 재건축아파트와 분당과 용인 판교 등 신도시 근처는 분명한 상승세에 있다"며 "2001년도에도 (과열이) 강남에서 시작해 확산됐다. 확산되는 문제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문제는 부동산투기가 주택에서 토지로 움직이는 걸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정부의 개발정책이 있다.
부동산가격은 행정도시 후보지가 가장 많이 올랐다고 한다. 또 기업도시 선정이 2~4군데 예정돼 있어 주변 땅값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여기에 공공기관이 100여개 이상 옮겨가게 되면 토지는 지금보다 앞으로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은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그렇게 개발을 해대는데 땅값이 오르지 않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박 총재의 이 경고는 묻히고 말았다. 1분기 2%대 성장률이 지나치게 부각됐고 박총재의 이날 발언도 전에 없이 신중에 신중을 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도 전처럼 막하지는 않았지만 금리인상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쳐 채권시장의 눈을 가렸다.
이날 박 총재는 말을 꺼낼때마다 "아직은..." "현 상황에서는..." "현재 단계에서는..." "당분간은..." "다만...." "..하더라도..."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아직은` 내수만으로 경제를 이끌기에 부족하고, `현재 단계에서는` 부동산 거품에 대해 중앙은행이 나설 때가 아니고 `당분간`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5월의 `당분간`이 연초 올해의 통화정책 방향을 정할 때 `당분간`이나 4월까지 금통위 회의 이후 표현한 `당분간`과 같은 말인지는 곱씹어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의 전망처럼 하반기 경제가 회복된다면 `당분간`은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다.
한은 한 국장은 이런 말을 했다. "부동산 가격이 뛰게 되면 거품도 문제지만 실물경제가 타격을 받는다. 땅값이 높아지면 기업이 설비투자를 하기 어렵고 임대료가 올라가면 서비스업이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또 그는 곧이어 다음과 같이 말끝을 흐렸다. "부동산을 생각하면 경기가 빨리 살아나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