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역사는 해외원조의 역사와 흐름을 같이 한다. 직업훈련의 역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외국인 명소 이태원에는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한국폴리텍대학 정수 캠퍼스가 있다. 1973년 정수 직업훈련원으로 설립해 1976년 미국으로부터 시설과 장비를 무상 원조받아 본격적인 산업기술인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대표 공공 직업훈련 기관인 한국폴리텍대학의 중심 캠퍼스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독일, 일본, 벨기에 등 선진 각국의 지원과 도움으로 설립됐다. 경제적 지원 외에 제도와 시스템, 운영 노하우도 함께 전수했다.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이 250년 걸린 경제사회적 발전을 우리나라가 불과 50년 만에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독일 파견 한국인 광부의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 정부가 제공한 루프트한자 항공편으로 꼬박 28시간 걸려 서독을 방문하게 된다. 독일 총리와의 단독회담을 시작하면서 먼저 말문을 연 박 대통령은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강하지 못해 세계를 몰랐고 그래서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제 독일에 와서 라인강의 기적을 배우고 우리도 독일처럼 부강한 나라가 되어 공산국가의 위험에서 자유로운 강국이 되고자 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일제강점기였지요.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모릅니다.” 에르하르트 총리는 회담 후 담보가 필요 없는 재정 차관 2억 5000만 마르크를 한국 정부에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이 초과근무를 자청, 몸이 부서지라 일해 고향에 송금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차 안에서 이미 들었던 터였다. “여러분, 모국의 가족이나 고향 땅 생각에 그리움이 많을 줄로 생각되지만,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결국 연설은 어느 대목에선가 완전히 중단됐고 강당 안은 눈물바다가 돼버렸다.
올해는 파독 광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원동력은 각국의 지원과 원조를 헛되이 쓰지 않고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탄탄한 직업훈련제도와 교육혁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기업가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도움받던 나라에서 도움 주는 유일한 나라가 됐다. 이제 부산 엑스포 유치가 한 달 반 앞으로 다가왔다. 성공적 유치를 통해 더욱 강화된 국제사회의 리더로 한층 높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