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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월가 굴지의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CS)와 노무라가 된서리를 맞았다. 한국계 펀드매니저 빌 황이 이끄는 아케고스 캐피털 매니지먼트가 투자한 주식값이 하락하며 유동성 압박에 직면하자, 아케고스에 돈을 빌려준 초대형 IB들의 주가가 일제히 폭락했다. 월가는 ‘아케고스 사태’를 두고 초긴장 상태다.
CS 11.5%↓ 노무라 14.2%↓
29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CS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11.50% 폭락한 주당 11.3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11월 9일(11.27달러) 이후 최저치다. 장중 11.06달러까지 내렸다. 노무라 주가는 14.20% 내린 5.68달러에 마감했다.
투자자들이 두 IB의 주식을 투매한 배경에는 아케고스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26일 뉴욕 증시에서는 대형 미디어와 중국 기술주를 중심으로 초대형 블록딜이 쏟아졌다. 블록딜은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한 매도자가 사전에 매수자를 구해 장이 끝난 후 지분을 넘기는 거래를 말한다.
주식 매각 대금은 IB들이 아케고스에 빌려준 돈에 미치지 못했다.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수면 위로 떠오른 CS와 노무라 주가가 이날 폭락한 이유다. CS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번달 말 마감하는 올해 1분기 실적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CS가 가리킨 손실 가능성은 아케고스와 연관돼 있다. 노무라는 “미국 고객사와 거래 과정에서 일어난 사태로 20억달러 손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역시 아키고스가 내야 할 돈인 것으로 전해졌다.
명성에 흠집 난 월가 대형 IB들
만에 하나 연쇄 마진콜 등이 발생할 경우 월가 전반이 충격에 휩싸일 수 있다는 공포감도 작지 않다. 마진콜에 따른 매물은 주가에 큰 하락 압력을 가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이날 모건스탠리와 UBS 주가는 각각 2.63%, 2.81% 내렸다. 도이체방크의 경우 3.24% 고꾸라졌다. 골드만삭스 주가는 0.51% 떨어졌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주가는 1.55% 내리는 등 금융주 전반이 하락 압력을 받았다.
아케고스를 이끄는 빌 황은 2012년 내부자거래 혐의 등으로 월가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점에서 더 주목된다. 굴지의 IB들마저 큰 수수료를 안겨주는 빌 황에게 대규모 차입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월가 IB들 입장에서는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것보다 명성에 흠집이 난 게 뼈아파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번 아케고스의 유동성 위기가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사태를 연상 시킨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LTCM 펀드는 당시 러시아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었는데,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파산했다. 덩달아 월가 대형은행들도 위기를 맞았다. 이에 연방준비제도(Fed)가 직접 나서 구제금융을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