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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일경 기자]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 사람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태화관에서 만해 한용운 선생을 비롯한 민족대표 33인은 민족자결과 자주독립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3·1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같은 날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도 독립을 염원한 수많은 이들이 모여 “대한독립 만세”를 목 놓아 외쳤다. 하루 전날 천도교 중앙대교당에 숨겨뒀던 2만1000여장의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는 시민들의 손에서 손으로 퍼져나갔다.
탑골공원에서 종로로 쏟아져 나온 군중은 덕수궁 대한문을 지나 장곡천정(현 소공로)을 거쳐 남산 조선총독부를 향해 행진했다. 선은전 광장(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 이르렀을 때에는 3000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가 총독부로 가기 위해 본정통(현 충무로)으로 들어서자 일제 헌병경찰이 제지했고 양 측이 충돌하며 2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어느 해보다 맑고 따뜻한 초봄을 맞았던 3월1일 그 날 가장 치열했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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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자화상…보행자 통행불편 고려, 구석자리로 내몰려
한 세기 100년이란 시간이 흐른 현재 3·1독립운동기념터엔 `3·1독립만세 시위대가 일제 헌병경찰과 격돌해 200여명의 부상자를 낸 곳`이라는 글귀가 적힌 표지석만 덩그런히 남아있다. 부끄럽게도 한국은행 출입기자로 3년씩이나 수없이 오간 자리였지만 한은 바로 옆에 이런 역사가 깃들어있는 장소가 있다는 건 까마득히 몰랐다. 사회부로 부서를 옮겨 이번에 3·1운동 100주년 기사를 준비하고자 서울시내 독립운동 유적지를 직접 찾아 다니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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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진원지인 옛 태화관 터 역시 남감리교회 재단에 인수되면서 헐려 지금은 12층 규모의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건물이 들어서 있다. 삼일독립선언유적지란 표석도 이면도로 변에 위치해 보는 사람이 드문 거리다. 대로 쪽에 위치했더라면 보다 많은 시민들이 지나며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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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시작된 ‘역사 바로알기’…국민 관심 중요
서울에만 151곳에 달하는 독립운동 사적지가 존재하지만 대부분 표석만 덩그러니 놓여 진 상황이다. 관심을 갖고 일부러 찾지 않은 이상 무심코 지나쳐버릴 정도의 작은 표석만 세워져 있다. 서울시는 사적지 지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스마트서울맵’ 서비스로 지칭되는 서울지도포털에는 △3·1운동 답사코스 △준비과정 △이동경로 △시위장소 △독립운동 사적지 △버스정류장 명칭병기 등 다양한 메뉴를 통해 총 263개 콘텐츠를 활용, 한 눈에 3·1운동사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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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감이 있지만 1일 서울시는 독립운동사에서 의미가 있는 장소 근처 시내버스 정류장 12곳에 독립운동가 이름을 병기하기로 했다. 백범 김구 및 안중근 선생을 포함해 유관순·이회영·윤봉길·한용운·김상옥·이봉창·여운형·강우규·권기옥·조소앙 열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독립투사 12분이 최종 선정됐다. 종로·중구·용산·성북 등 가로변 9개와 중앙차로 3개 정류소에 각각 해당 유공자에 대한 안내문이 설치된다.
서울역사박물관 버스정류소 명칭도 ‘서울역사박물관 김구 집무실(경교장)’로 바꾸고 서울다원학교의 경우 ‘서울다원학교 한용운 활동 터’로 개선된다. 서울백병원·국가인권위·안중근 활동 터, 서대문경찰서·유관순 활동 터, 남대문시장 앞 이회영 활동 터, 효창공원삼거리 윤봉길 의사 등 묘역, 종로5가·효제동·김상옥 의거 터, 숙명여대후문·이봉창 활동 터, 혜화동로터리·여운형 활동 터, 서울역버스환승센터·강우규 의거 터, 장충문화체육센터·권기옥 활동 터, 삼선교·한성대학교·조소앙 활동 터로 한 분 한 분을 부르게 된다.
종로구 공영주차장이 차지하고 있는 태화관 터 약 1500㎡ 부지 또한 전면공지를 ‘3·1운동 독립선언 기념광장’으로 새로 조성한다. 오는 4월 착공에 들어가 74주년 8·15 광복절 날 완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