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th SRE]정책금융에 매달린 현대그룹

[워스트레이팅]맏형 현대상선 ‘BBB’급 강등 위기
  • 등록 2013-11-13 오전 7:00:00

    수정 2013-11-13 오전 7:00:00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보수적이라면 둘째가기 서러운 신용평가사가 지난 달 ‘풍전등화(風前燈火) 국내 해운업계, 본원적 대책 마련 시급’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제목의 스페셜 리포트를 냈다. ‘바람 앞에 등불’이라니….’ 언제 꺼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을 뜻하는 사자성어를 제목에 떡하니 달았다.

주요 분석대상은 국내 해운업체 1, 2위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다. 한국신용평가는 “2012년부터 상위선사의 뚜렷한 실적차별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국내 선사인 현대상선, 한진해운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선종다각화와 자본력, 계열과 정부의 저조한 지원으로 금융위기 이후 재무구조가 가장 큰 폭으로 악화됐다”고 진단했다. 특히 “실적 차별화는 구조적 원가 경쟁력의 차이 때문이어서 중장기적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여 본원적 경쟁력 강화 방안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대체 어느 정도기에 신용평가사에서 이런 코멘트가 나오는 것일까. 이미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올 초 현대상선의 등급을 A에서 A-로 낮춘 데 이어 6개월 전에는 또다시 ‘부정적’ 꼬리표를 붙였다.

정책금융에 ‘목매다’

“지금으로선 현대그룹이 재무적으로 가장 위험하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책금융의 지원 가능성도 가장 높죠.”

지난 17회 SRE에 이어 두 번째로 워스트레이팅(현재 재무구조를 고려할 때 신용등급이 적정하지 않은 기업) 1위에 오른 현대상선(A- 부정적)·현대엘리베이터(A 부정적)·현대로지스틱스(BBB+ 안정적)에 대한 한 자문위원의 총평이다.

현대상선·엘리베이터·로지스틱스는 18회 SRE에서 총 43표를 받아 워스트레이팅 1위에 올랐다. 지난 17회(36표)에 비해서도 7표 가량 늘어났다. 지난해 웅진에 이어 올해 STX, 동양그룹까지 줄줄이무너지면서 현대그룹에 대한 우려도 동반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현대상선은 지난 달 22일 만기도래한 회사채 2800억원을 정부의 회사채 차환 지원 제도를 통해 발행했다. 만기도래금액의 80%인 2240억원을 산업은행이 총액인수했고, 나머지 20%는 자체 상환했다. 이는 2010년 5월 현대그룹이 금융감독원의 재무개선약정 체결을 거부하고, 은행권 여신을 대거 상환하며 채권단에 등 돌린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유동성을 공급받게 된 것이다. 대신 재무개선을 위한 자산매각 등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산업은행의 입김 아래 놓이게 됐다.

현대그룹은 올 들어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을 추진했지만, 산업은행 등 은행들이 지급보증에 난색을 표하며 지지부진한 상태다. 금융감독원이 영구채 지급보증시 100% 금융권 익스포저로 반영하기로 한 영향이다. 현대그룹은 현재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 등을 접촉하며 4000억원 규모의 영구채 발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크레디트 업계에서는 그동안 현대그룹이 의존했던 시장을 통한 유동성 공급에 빨간 불이 켜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의 지원이 아니면 차환 발행조차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신평에 따르면 현대상선의 차입금 잔액은 지난 3월말기준 6조36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내년과 2015년에 갚아야 할 차입금은 1조6400억원, 1조2800억원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SRE 자문위원은 “산업은행 등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로 도움을 받고 있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영업과 재무상황 모두 매우 취약한 상태”라고 꼬집었다.

다른 자문위원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이미 정책금융의 영역에 들어갔다”며 “동양, STX 사태에 대한 여론 악화 때문에 정부가 어느 정도 링거를 꽂아주겠지만 영업이 스스로 좋아지지 않으면 기대할 게 없다”고 지적했다.

실적 악화일로 “경쟁력 없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현대로지스틱스를 포함, 경기변동에 민감한 운송부문이 전체 매출의 87.7%에 달하고 있어 그룹 전반의 실적 변동성이 크다. 그동안 부족한 운영자금, 투자자금 확보를 위해 최근 3년 간 현대엘리, 현대증권, 현대로지스틱스 등 주력사가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한 자본만 1조5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대규모 손실, 선박 인수 등으로 인해 2008년 4조5000억원이던 합산기준 계열 순차입금은 지난해 말 6조3000억원으로 40%나 늘어났다. 계열 단순합산 부채비율 역시 400%를 넘어섰다.

현대상선은 2012년 말 기준 그룹 내 자산과 매출비중이 각각 69%, 77.9%에 달한다. 하지만 2009년 이후 2010년을 제외하면 줄곧 마이너스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기록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2009년 2400억원의 마이너스 EBITDA를 기록했고, 2011년 -1370억원, 2012년 -2800억원, 2013년 6월말 -880억원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흐름(OCF)도 매년 1000억~3000억원씩 마이너스를 기록중이다.

특히 2011년이후 영업실적 부진 등으로 차입금이 늘어난 반면 대규모 손실, 상환우선주 상환으로 자본이 크게 줄어들며 3월 말 현재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898%까지 치솟았다. 순차입금은 5조5700억원이나 된다.

이 가운데 현대상선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컨테이너선 시장은 서비스의 균질화 등으로 인해 차별화된 운임을 받기 어렵다. 업체별로 뚜렷한 실적 차별화를 보인 지난해 이후에도 평균 운임의 변동율은큰 차이가 없다.

송민준 한신평 연구원은 “컨테이너선 영업성과의 차별화는 원가경쟁력에 좌우된다”며 “머스크 등 상위 선사들이 초대형 선박 도입, 얼라이언스 구축 등으로 원가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1위의 해운사인 머스크(APM-Maersk)는 글로벌 선사 대부분이 영업손실을 기록한 지난해에도 5억25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올 상반기에도 운임하락으로 대부분의 컨테이너 선사가 전년보다 실적이 나빠졌지만, 머스크의 영업이익률은 1분기 3.1%, 2분기 7.0%로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한 SRE 자문위원은 “2010년 선박 공급과잉 상황에서 해운사들 수익성이 모두 좋아져 의문이었다”며 “핵심은 그동안 유지됐던 해운동맹이 깨지면서 구조적인 원가경쟁력에 따라 실적이 차등화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메이저 선사와 경쟁하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사이에 끼여 넛크래커 신세가 됐다는 설명이다.

경영권 방어 파생계약의 덫 회복되지 않는 해운업황과 영업실적 부진으로 난관에 봉착한 현대그룹. 여기에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맺은 과도한 파생계약의 부담에도 짓눌리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 7월 현대로지스틱스의 2대 주주이자 재무적투자자(FI)인 우리블랙스톤PEF에 1200억원을 물어줬다. 현대로지스틱스 상장(IPO)이 무산되면서 투자원금 1000억원과 기관경과분 약정이자를 내어준 것이다.

현대상선의 대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는 계열사 경영권 방어용 우호지분 확보를 위해 주가손실을 보전하는 파생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2011년 12월 현대증권의 증자과정에서도 현대상선, 현대엘리, 현대유엔아이가 주가변동 위험을 부담하는 주주 간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같은 파생계약은 현대상선, 현대증권 등의 주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지난 8월을 고점으로 재차 횡보세를 보이며 대규모 파생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737억원, 올 1분기에만 1953억원의 파생손실을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파생계약의 손실규모를 결정할 현대상선 주가가 하락세를 타며 11월 7일 1만2900원 까지 내려앉았다는 점이다. 한 신평사 연구원은 “재무부담이 너무 커 영업으로 해소하기 어려운 상황에 파생계약 만기가 내년부터 돌아온다”며 “이부분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모니터링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폭지원이냐 강력 구조조정이냐

현대그룹은 올 들어 현대건설 이행보증금 회수 2400억원, 회사채 신속인수 차환발행 2800억원, 교환사채(EB) 발행 1300억원 등을 비롯해 총 1조43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은 최근 주주배정 유상증자 지분증권신고서를 통해 내년까지 만기도래하는 5000억원의 회사채중 4000억원을 정부의 회사채 차환 지원을 통해 차환하겠다고 밝혔다. 회사채 신속인수제에서 20%는 자체 상환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만기도래 회사채 전량을 정부와 산업은행의 지원으로 조달하는 셈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송민준 연구원은 “금융위기 이후 세계 1,3위의 컨테이너 선사인 유수의 해운선사들이 정부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지원(직접대출·지급보증) 받고 있는데 반해 국내에서는 장기적 관점의 대책이나 지원이 유보된 채 제한적 유동성 지원만 이뤄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국내 해운업계가 지금같이 상환재원 마련을 위한 후행적 자금조달과 유동성 지원으로 불황을 버틴다고 해도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후일 수 있다”며 “정부, 금융기관, 투자자가 공조해 과감히 정책적 지원을 하거나 방향을 제시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조만간 신용평가를 통해 현재 ‘A- 부정적’인 현대상선의 신용등급을 BBB급으로 낮출지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등급이 또다시 강등된다면 현대상선은 불과 1년여 만에 신용등급이 2단계나 낮아지게 된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18th SRE’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18th SRE는 2013년 11월13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161, min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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