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감독은 상업영화가 지배하고 있는 중국 영화 시장의 현황을 털어놨다. “관객의 80~90%는 젊은이들이고, 이들은 극장에서 예술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것. 그는 “이러다가는 영화산업 자체가 몰락하고 말 것 같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면서 “이럴 바엔 무협과 고전을 이용, 서구에도 먹힐 수 있는 중국만의 상업영화를 만들자는 결심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거의 허풍으로 느껴질 만큼의 화려한 이미지와 스펙터클의 향연은 그 필수조건이었다는 것. ‘황후화’에서 그 이미지는 황금갑옷을 입은 10만 대군, 수만 평을 뒤덮는 황금색 국화, 10만 병사가 덩어리가 되어 싸우는 전투장면으로 대표된다. 주윤발(황제)과 공리(황후), 그리고 주걸륜(둘째 왕자) 등 초호화 캐스팅이 그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사실 ‘홍등’(1991)이나 ‘집으로 가는 길’(1999)의 작가주의 감독으로 장이머우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최근의 ‘흥행 감독 장이머우’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에게 ‘두 명의 장이머우’ 이야기를 꺼내자 “우선 그 표현에 감사한다”며 껄껄 웃었다. “그 말은 내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예전 장이머우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 아니냐”면서.
‘붉은 수수밭’(1987)으로 연출 데뷔한 지 올해로 20년째. 그 기간 동안 영화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중국 격언에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화는 늘 배울 게 많은 예술이다.” 너무 ‘모범답안’ 같다고 살짝 비틀자, 어젯밤 새벽 4시까지 봤다는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받은 작품(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바벨’)을 DVD로 봤는데 정말 대단했다”는 것. 자신보다 열 살 넘게 어린 40대 초반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것 봐라. 이렇게 능력 있는 젊은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계속 배우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또 한 번 예의 그 너털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