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I am still hungry).”
거스 히딩크 감독이 PSV 아인트호벤과 함께 제3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아인트호벤은 10일 모나코 루이2세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2차전에서 전반 27분 터진 헤셀링크의 선제골과 후반 14분 비즐리의 추가골로 AS 모나코를 2대0으로 누르고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8강에 올랐다. 주전으로 활약한 박지성과 이영표는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8강 무대를 밟는 영광을 안게 됐다. 히딩크는 1988년 아인트호벤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안았고, 2002년 한국팀을 맡아 4강 신화를 이룬 뒤 3번째 ‘기적’에 도전하고 있다. 모두 ‘보통 선수들’과 함께 일궈가는 성공 스토리다.
지난해 7월 아인트호벤은 팬들의 격렬한 비난에 휩싸였다. 간판 스타 아르옌 로벤과 마테야 케즈만을 잉글랜드 ‘부자구단’ 첼시에 팔아 넘겼기 때문이다. 매년 150억원 이상의 적자에 시달리던 아인트호벤은 로벤의 이적료 약 240억원, 케즈만의 이적료 약 100억원을 단숨에 벌어들였다. 그러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염원하던 팬들은 “꿈을 포기한 것인가”라며 질타했다.
이상하게도 상황은 17년 전과 맞물린다. 1988년 아인트호벤이 유러피언컵(챔피언스리그 전신) 우승을 차지했을 때와. 당시 아인트호벤은 최고 스타 루드 굴리트를 세계 최고 이적료인 570만파운드를 받고 AC밀란으로 팔았다. 만성 적자 때문이었다. 그러나 히딩크는 꽉 짜인 조직력과 상대의 틈을 파고드는 전술로 우승컵을 안았다. ‘최고의 이변’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는 지금 다시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팀에 껍데기만 남았다”는 혹독한 비판을 딛고 유럽 최고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중량감 있는 최전방 스트라이커나 ‘월드 스타’는 없지만 유망주들을 키워 정상의 팀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미국 대표팀 출신 다마커스 비즐리, 페루의 신성 헤페르손 파르판, 한국의 박지성·이영표 등 ‘진흙 속의 진주’들이 빛을 내고 있다.
덤으로 ‘돈잔치’도 벌일 수 있게 됐다. 아인트호벤은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로 약 720만유로(약 100억원)를 이미 챙겼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중계권 수익까지 합하면 구단 1년치 예산(약 670억원)을 넘는 거액을 벌어들일 수 있다.
히딩크 감독은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오른 팀 중 우리가 가장 재정상태가 열악하지만 당당히 8강에 올랐다”며 “스몰 마켓 팀이 부자 구단을 줄줄이 물리치는 장면을 보여주겠다”고 기염을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