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여성 전용 헬스클럽, 스터디 카페 등 여성 고객만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 확대되고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 등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지만 역차별이라는 비판도 함께 나오는 상황이다.
“워킹맘으로 살다 망가진 몸 보고 결심”
조민아(여·57)씨는 지난 8월 경기도 일산에 여성 전용 PT(퍼스널 트레이닝)숍을 열었다.
아이 셋을 키우며 워킹맘으로 살았다던 그는 40대 중후반부터 찾아온 목 디스크와 손목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조씨는 “어느 날 혼자 운동을 하다 눈물이 막 흘렀다"며 "우리 여성들이 결혼하면서 아이가 생기고 가정에만 충실하다 보니 정작 본인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고 전했다. 이어 “살림, 맞벌이, 육아까지 부담하는 여성들도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도움이 돼야겠다는 마음으로 (여성 전용 PT숍을) 열었다”고 답했다.
여성들도 편하게 운동하는 PT숍을 꿈꾼다는 그는 “(여성들이) 자기 자신도 아끼면서 건강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조 씨의 헬스장에는 20대부터 시니어 반의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여성들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 좋아요”
실제로 조씨가 운영하는 헬스장에 다닌다는 이민영(가명·21세) 씨는 “남녀 공용 헬스클럽에 다녔을 때는 운동용 레깅스를 입기도 민망했다”면서 “여성전용 헬스클럽이다보니 복장이나 마음가짐이 자유로워졌다”고 답했다.
그는 “가슴이나 다리 근육도 잘 짚어줘서 운동에도 도움이 된다”면서 “생리 기간에는 혹시나 새지 않을까 조심히 움직였는데 그럴 일은 없어졌다”고 덧붙였다.
다른 여성 전용 헬스장 이용자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시대에 따라 다양해져...“역차별” 비판도
1990년대 여성 전용 공간의 시초 격인 여학생 휴게실, 이른바 ‘여휴’가 등장했다. 대학교에 남성이 절대적으로 많던 시절 소수였던 여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등장한 전용 공간이었다.
이후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여성 친화적 도시 만들기’ 사업이 등장해 여성 전용 시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여성우선 주차장, 여성 전용 택시 등이다.
최근엔 민간 사업장에서 여성 스터디 카페나 헬스장 등 여성 전용시설들이 생겨나는 추세다.
경기도 고양시에 여성 전용 스터디 카페를 창업한 전가형(여·32세) 총괄 매니저는 경력단절 여성을 위해 스터디 카페를 창업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결혼, 출산, 육아를 겪으며 공부를 지속하기 힘든 여성들이 새로운 도전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여성 전용 스터디카페를 오픈했다"며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라고 독려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화여대 앞에서 스터디 카페를 운영 중인 정연태(남·34세) 씨는 창업 일주일 만에 남녀공용에서 여성 전용 스터디 카페로 명의를 변경했다.
정씨는 "여대 앞이라는 점을 고려해 시설을 변경했다"며 "커플이나 남자 대학생들이 자주 오는 스터디 카페에서는 여학생들이 잠깐 자는 것도 불편할 거라고 판단해 (여성 전용으로) 바꿨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기존 시설의 경우 남자로서 예상하지 못한 여학생들의 건의들이 많았다”며 “화장실 창문을 불투명으로 바꾸거나 화장실 안에 비상벨을 설치하면서 여대생들의 고충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전용시설이 너무 과하다”며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여성전용시설이 지나치게 난립하면서 오히려 성별 갈등을 부추긴다는 것.
여성 전용시설에 반대한다는 대학생 유 모씨(남·24세)는 “스터디카페 같은 곳은 굳이 여성 전용을 만들지 않아도 되지 않냐”면서 “양성평등을 원한다면 함께 공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남성 권익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수달채널’ 측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여성 전용시설이 또 다른 '성차별'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여성 전용 공공시설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보였다.
이들은 “남성들도 세금을 많이 내고 국방의 의무까지 지는데, 여성 전용시설을 만드는 것은 남성들에게 심각한 박탈감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퀄리즘 작가 ‘오세라비’ 역시 칼럼을 통해 여성전용시설 확대는 남성 입장에서 역차별과 성차별로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여성만을 이롭게 하는 정책을 만드는 데 주력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오 작가는 여자 휴게실을 설치했던 시절과는 달리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 더 이상 여성 전용시설이 필요 없다는 의견을 펼치기도 했다.
여성계 “'여성 전용' 등장한 맥락 살펴봐야”
역차별이라는 주장에 대해 전문가는 “여성 전용시설이 등장한 맥락과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여성 전용시설은 여성을 각종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며 “여성만의 별도 시설을 마련한다는 의미보다는 여성도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는 점을 알리는 적극적 조치의 하나”라고 답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살인·강도·성폭행 등 강력 흉악범죄에서 여성 피해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5년 79.9%에서 2010년 82.6%, 2018년 89.2%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강력범죄 피해자 10명 중 9명꼴이 여성인 셈이다.
이중 강간 및 강제추행은 2018년 발생 건수 총 2만3478건 중 여성 피해자가 2만1413건으로 91.2%에 달한다. 사실상 여성 대상 범죄인 셈이다. 살인·강도·절도·폭력과 함께 대한민국 ‘5대 범죄’ 중 하나인 강간 및 강제추행 비중은 2010년 2.5%에서 해마다 증가해 2017년에는 4.8%에 달했다.
여성이 느끼는 불안감도 상대적으로 크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국민생활 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들어 범죄 두려움을 느끼는 여성은 33.8%인 반면 남성은 7.3%에 불과했다.
여성 우선 주차장을 비롯한 시설이 등장한 배경에는 이같은 통계가 뒷받침한다는 것. 김 소장은 또 “여성대상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회사에서도 남녀간 임금격차가 아직도 있는 점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었다고 해서 대등한 지위가 되지 않았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 스냅타임 김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