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런던이 금융중심지를 유지하는 이유

양질의 전문인력 공급되고
시장친화적 감독규제 한몫
韓 제3 중심지 놓고 논란
전문가 모일 시장이 우선
  • 등록 2019-03-20 오전 6:00:00

    수정 2019-03-20 오전 6:00:00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전 금융중심지추진위원] 대한민국은 지난 수십년간 중화학공업 위주의 산업에 집중하면서 금융업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산업 정도로 인지됐다. 그래서 독자적으로 금융업이 성공해야만 하는 절대절명의 절박함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금융시장이 글로벌 무한경쟁에 노출된 만큼 금융의 노하우 축적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안 것 같다.

최근 제3의 금융중심지를 추가로 지정해야 한다는 논란에 서 있다. 우려는 서울과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지정했지만 이들 두 도시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 또 다른 제3의 금융중심지 지정이 맞느냐다. 이는 이미 있는 금융기관을 쪼개 하향 평준화로 가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다.

영국계 컨설팅 그룹인 지옌(Z/Yen)은 세계 주요 도시의 금융경쟁력을 측정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24(Global Financial Centers Index)지수를 해마다 두 번씩 발표한다. 올해 3월 기준 서울과 부산이 각각 36위와 46위를 차지했다. 돌이켜보면 필자가 금융권에 몸담았던 지난 40여 년간 런던, 뉴욕, 홍콩, 싱가포르가 여전히 금융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상하이(5위)와 베이징(9위)의 지수 톱10 진입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금융중심지 논란의 주제를 위해 지난 500여 년간 가장 오래 금융업을 리드한 런던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살펴보자. 첫째, 영국의 경제력이 미국과 일본에 비해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금융중심지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양질의 금융전문인력 덕분인 것 같다. 영국정부는 성과중심 문화 정착을 유도하면서 경쟁력 있는 전문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런던을 글로벌 금융전문인력 양성센터로 자리매김했다.

많은 사람들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Brexit) 이후 영국이 금융중심지로서 위상이 약해져 금융 권력을 잃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이유는 유럽의 다른 나라가 지난 500여 년간 쌓은 영국의 금융인프라를 어떻게 대치하느냐다. 그 이유는 금융노하우의 축적은 1~2년 투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둘째, 시장친화적인 금융 감독 규제다. 영국은 ‘무엇이 보다 좋은 규제인가’라는 관점에서 규제를 바라봤다. 이로 인한 규제준수 비용이 축소되면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대신 리스크가 큰 금융회사 또는 금융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부문에는 감독의 역량을 집중시켰다.

셋째, 시장참여자들의 접근성이 매우 용이하다. 런던은 미국과 아시아 지역의 중간 시간대에 위치해 국제금융거래의 연속성으로 외환거래시장 규모가 전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런던은 중동 및 아시아 신흥시장과도 시간적·지리적으로 접근이 매우 용이하다. 문화적인 인프라 면에도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고 있어 외국 금융회사 종사자들의 영업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이 같은 사항들을 점검해 볼 때 서울은 물론 부산도 아직 금융중심지로서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전주를 굳이 국민연금을 연계한 자산운용업의 도시로 키운다면 여러가지 사항을 점검해 시장이 작동하게 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전주는 호주의 퇴직연금과 연계한 시드니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퇴직연금 시스템은 직장인들이 대부분 갖고 있는 원리금 보장형의 퇴직연금으로 주식투자 비중은 10%도 안 된다. 자본시장의 메커니즘은 실종된 상태다. 반면 자산운용업 위주의 시장으로 금융중심지를 영위하고 있는 미국과 호주를 보면 미국의 퇴직연금은 생애주기에 맞춘 자산배분으로 연령대별로 주식투자 비중이 50~70%나 된다. 호주의 경우에도 주식투자 비중이 50%에 부동산ㆍ인프라 등 대체투자 비중이 높다.

전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의 후생연금펀드(GPIF-1500조원)의 경우 법률상 주식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펀드 내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자산운용사가 대행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반면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투자의 약 절반을 위탁 운용하면서 펀드가 아닌 일임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다. 만약 국민연금도 GPIF처럼 실력 있는 운용사를 선정하고 그 성과를 감독하는 간접 운영 방식으로 바꾼다면 많은 자산운용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민연금의 규모가 전세계 3위(약 600조원)라고 해도 시장체제로 바꾸지 않는다면 자본시장의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금융전문인력을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아닌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로 키워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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