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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수수료가 아닌 금융상품 판매 수익에 의존하는 국내 증권사 특성을 고려하면 새로운 평가체계가 자리 잡지 못할 것이다.”(B중소형 증권사 관계자)
NH투자증권의 KPI 폐지발표 이후 증권가는 물론 은행권 등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놀랍다’는 반응과 함께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이 팽팽하다. 새로운 방식의 KPI개선을 두고 금융권 모두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폐지’는 무리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NH證 과감한 실험 성공 ‘미지수’
핵심성과지표(KPI)는 직원에 대한 성과측정지표로 금융권에 두루 쓰이고 있다. 직원의 업무실적을 수치화해 공정한 평가가 가능하고 업무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도입했지만, 과도한 실적압박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높았다. 특히 구성항목이 단기 실적 위주여서 과당경쟁으로 이어지고 결국 불완전판매를 유발해 금융권 전체의 신뢰도를 갉아먹는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때문에 개선을 넘어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 가운데 NH투자증권이 전면 폐지라는 실험에 나서자 증권가 이목이 집중됐다. 경쟁 증권사의 반응은 뜻밖에 긍정적이다. WM분야에서 KPI를 없애고 직원의 자율성을 인정하면 특별한 동기부여가 없어도 자산관리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KPI를 보면 회전율을 높여 수수료 수익을 늘리는 이익을 증가하는 항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결국 매매가 잦은 국내 주식 시장의 현실상 잦은 매매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뿐 아니라 금융상품을 판매해도 단기간에 투자풀을 리밸런싱(재조정)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획일적인 KPI가 없어지면 스스로 금융상품과 시장을 분석할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어 업무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 다수가 브로커리지 중심 영업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데는 현재의 KPI가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수수료 수익이 여전히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다 단기 실적 부진이 증권사 대표와 임원 임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과감한 개혁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은행권 “KPI폐지 현실적 불가능”
시중은행들은 KPI 폐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NH투자증권을 계열사로 둔 NH금융지주부터 그렇다. NH농협은행은 오히려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영업점의 기존 KPI는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지주 관계자도 “NH투자증권은 고객 가치에 대한 정성적인 평가를 더 늘리겠다는 고민으로 안다”며 “다른 계열사는 그대로 유지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KPI 개선에 대한 목소리 자체에 의미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직원은 “상시로 운영하는 프로모션과 캠페인 등이 과당 경쟁을 부르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변화하는 금융 환경에 대응하려면 영업점 중심으로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美·EU, KPI방식 도입 필요
전문가들은 KPI에 정성적 평가를 반영하고 평가 단위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웰스파고(Wells Fargo)와 스웨덴 한델스방켄(Handelsbanken)등의 사례를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웰스파고는 지난 2016년 불건전 영업행위로 유령계좌 사태가 터진 이후 KPI에 고객 지표 비중을 높인 정성 평가 방식을 도입했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은 “웰스파고의 KPI개선 방안에는 고객 만족과 내부통제, 고객 증가를 반영하도록 지난 2017년 1월부터 도입했다”며 “고객 확보나 상품별 판매 목표를 영업점 단위에서 결정하는 바텀업(Bottom-up·상향식) 방식을 채택해 본부와 영업점이 협의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한델스방켄은 ‘모든 지점이 은행이다(All Branch is Bank)’는 슬로건 하에 영업점의 의사 결정권을 대폭 강화했다. 지점장은 지점의 인사와 예산 등 모든 경영권을 행사한다.
이 실장은 “웰스파고와 한델스방크가 시사하는 점은 핵심경쟁력으로 직원들의 역량 강화에 집중한다는 점”이라며 “능력 있고 자율권을 부여받은 직원에게 굳이 성과를 독촉하면서 강력한 동기 부여책을 내릴 필요도 없다”고 설명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KPI 지표에 수익성보다는 리스크 관리, 고객 보호 등의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