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리고 비싸더라도 옷 제작에 소비자가 직접 참여해 의미를 담기를 바랐죠. 앞으로는 개인이나 중소기업에서 원하는 옷을 말하면 만들어주는 플랫폼의 형태로 자리 잡고 싶어요. 마치 레고처럼 소비자가 원하는 옷을 조립하듯요.”
과잉 생산의 시대에서 나만의 물건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커스터마이징은 새로운 소비트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느리지만 과거처럼 수작업으로 필요할 때 생산하고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는 곳이 있다.
패스트패션이 휩쓸고 있는 요즘 1년째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옷을 만드는 ‘해브해드 (Havehad)’ 이승환(28) 대표를 만났다. 그는 독특하게도 옷을 제작한다고 하지 않고 조립한다고 표현한다.
청계천 상가 매대 셔츠에서 아이디어 ‘번쩍’
“변화무쌍한 패션업계에 뛰어든 것은 마음 맞는 친구 두 명과 쇼핑몰에 알고리즘을 적용해 상품을 추천하는 인공지능(AI)을 만들면서부터죠. 그러던 중 자주 가는 청계천 산책로 상점 매대의 셔츠 석 장이 제 인생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매대 위 셔츠가 안 팔리면 다 버려질 텐데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죠. 필요한 만큼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해브해드 (Havehad)’를 시작했어요.”
이 대표는 도시설계 전공자다. UX(user experience·사용자 경험)디자이너로 경력을 쌓던 그는 옷이나 패션을 전혀 알지 못하는 ‘패알못’이었다.
셔츠와 셔츠원피스를 조립하는 것으로 시작해 지금은 양털 후리스 재킷, 맨투맨, 청바지, 모자, 노트까지 모든 것을 조립하고 있다. 이를 가능토록 외주공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10명의 봉제사와 함께 자체 봉제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외주 공장을 쓰더라도 제한된 프로세스 안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직원이 상주해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월 매출 3억 비결…“데이터 기반 둔 R&D덕분”
“1개의 상품이 100개 팔리는 것보다 10개의 상품이 10개씩 판매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어요. 옷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소비자가 원하고 있는 편리함과 경쟁하는 거였어요. ‘옷에 자기표현, 추억, 주체성과 같은 가치를 불어넣어 버려지지 않는 옷을 생산한다’ 라는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난관에 부딪혔죠. 가장 큰 난관은 소비자가 이미 익숙해진 ‘편리함’과 경쟁하는 것이었어요.”
해브헤드는 한 달에 2~3가지 이상의 제품군을 출시하며 월 매출 약 3억원을 올리고 있다. 그 비결에는 이 대표가 회사 설립 초기부터 강조해온 데이터 기반의 R&D 덕분이다.
“소비자가 로켓 배송, 반값 할인과 같은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는데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갖자’라는 것으로 가성비 좋은 패스트패션을 어떻게 이기겠어요.”
이 때문에 다른 작업이지만 봉제사마다 작업량을 똑같이 맞춰 일정한 속도로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개인의 가치를 담기 위해 수공업을 추구하는 신조를 지키면서도 소비자가 빨리 받고 싶어하는 요구를 반영해 디지털을 결합한 것이다.
“다양한 영역서 소비자 직접 참여 제품 늘릴 것”
이 대표는 직접 참여하고 고심해서 고른 옷에 애착이 가는 만큼 생산 과정부터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제품을 늘려나가는 게 앞으로의 목표라고 했다.
특히 커뮤니티가 활성화하면서 최근에는 재킷을 만드는 아이디어로 그림을 보내주는 소비자도 생겼다. 해브해드만의 ‘원하는 옷을 조립해 만든다’는 아이디어에 반응하는 소비자가 점차 늘어 최근 출시한 양면 양털 후리스 재킷은 아이디어와 기획의도만 공개했는데도 당일 매출이 5000만원을 넘었다.
“앞으로의 시대는 의자, 컵 등 모든 물건이 패션 상품이라고 본다면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영역으로 조립하는 물건을 확장하는 게 목표죠. 우리가 입고 생활하는 옷의 의미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는데 이러한 커뮤니티를 통해 생산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참여해 옷을 만들어주는 곳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