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이데일리 김인경 특파원] 지난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김 위원장을 인민대회당에 초청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그동안 쌓였던 앙금을 풀자며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북·중 관계의 일화들을 풀기 시작했다. 눈길을 끈 것은 시 주석이 자신의 아버지인 시중쉰 전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시 주석은 자신의 아버지가 1983년 6월 김정일 당시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고궁 참관을 안내한 이야기를 언급했다. 시중쉰은 중국의 공산 혁명의 원로로 문화대혁명 시기 고초를 겪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북·중 관계가 좋던 시절, 북쪽 인사들을 접대하는 등 북한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시 주석은 “나의 아버지가 김 총 비서를 역전에서 맞이했고 모진 더위에도 불구하고 동행했다”며 “김 총 비서가 매우 큰 감동을 받았다”고 기억을 되짚었다. 시 주석 언급 뒤 커다란 텔레비전으로 당시 영상이 흘러나왔다. 시 주석이 자신과 김 위원장, 두 사람의 아버지 시절부터의 인연을 언급하며 ‘(우리는) 뿌리 깊은 나무’라고 칭하자 김 위원장도 ‘(북·중 관계는) 친형제 같다’고 답했다. 그 이야기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날을 세우기 바빴던 북한과 중국의 언론도 북·중 관계는 ‘역사적인 혈맹’이라며 재평가했다.
김 위원장이 최고지도자 자리에 앉은 후, 북·중 관계는 빠르게 냉각됐다. 김 위원장은 북한과 중국을 연결하던 친중파 장성택을 처형했다. 중국 역시 핵 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에 대해 경제제재에 나섰다. 2015년엔 모란봉악단이 중국에서 공연하기로 하고 리허설까지 마쳤지만 공연 몇 시간 전 취소되기도 했다. 지난해는 북·중 관계가 경색을 넘어 남보다 못한 사이로까지 악화되기도 했다. 시 주석의 특사였던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평양까지 갔지만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만남에서 두 나라는 냉전 시기, 가장 어렵고 곤란한 시절 함께 한 동질감을 확보했다. 북·중 관계를 두고 할 말이 산더미 같았을 시 주석이 굳이 아버지 시절의 사연을 꺼낸 이유 역시 이 같은 연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게 바로 이야기의 힘이고 연대의 무게다. 한 번의 만남으로 모든 갈등이 없었던 것처럼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관계의 깊이를 확인한 만큼, 양국 관계에 당분간 훈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남북 관계에서 케케묵은 불신과 정치적 앙금은 여전하다. 최근 20여년 사이에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몇 번의 해빙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다시 갈등이 불거졌다. 하지만 중국과 북한이 친형제 같은 사이라면 남북은 아예 한몸이나 다름없는 사이다. 우리에겐 함께 나눈 이야기도,역사도 풍부하다. 북한에는 결코 익숙지 않았을 우리 아이돌 가수들의 무대를 보면서도 박수를 아끼지 않고 이야기를 나눈 것 역시 같은 언어를 쓴다는 동질감과 흥이란 민족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달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이 단 한 번에 큰 결과를 내는 것 목표로 하기 보다 서로 함께 한 경험과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공통점을 찾고 연대감을 쌓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