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원자력 방호법, 不信의 사회적 비용

  • 등록 2014-03-20 오전 8:15:59

    수정 2014-03-20 오전 8:15:59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이건 넌센스인데, 국회선진화법 이후로는 중요한 법도 중요하다고 말을 못해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조 의원은 “중점 법안이라고 내세우는 순간, 야당이 낚아채 협상대상으로 쓴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지난 연말국회에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치른 후 매월 발표하던 중점법안을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결국 이같은 태도는 정부·여당의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비판으로 돌아왔다. 민주당은 원자력 방호방재법을 빨리 처리해달라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요청이 한 번도 없었다면서 “그 책임을 국회, 특히 야당에 돌리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는 계속 중요한 법이라고 강조해왔다”고 항변하는 여당과 “언제 그랬냐”며 항변하는 야당의 상황인식이 차이가 여기서 발생한 셈이다.

원자력 방호방재법이 통과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달 26일 국회 미방위는 미방위 계류법 112개를 일괄처리한다는 여야 원내수석부대표간의 합의 아래 법안을 처리할려고 시도했다. 여기에는 원자력 방호방재법도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의결만 앞둔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방송법 개정안은 위헌이라며 입장을 바꾸면서 미방위는 법안소위도 열지 못했다. 야당이 반발한 것은 물론이다.

결국 미방위의 파행 이후, 원자력 방호방재법이 표면화 된 것을 박근혜 대통령의 제 3차 핵안보정상회의 출국이 불과 열흘 남짓 남은 지난 13일이다. 여당은 이제와서 “이 법만이라도 통과시키자”라고 하지만 야당은 “방송법 때문에 미방위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더니 이제와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원자력 방호방재법’을 둘러싼 여야간의 공방은 자리잡지 못한 신뢰관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준다. 여야 모두 “나는 할 말이 있다”며 억울해 하지만 그 책임공방마저 아무 것도 생산해 내지 못한다. 오히려 국민의 정치권에 대한 진저리만 더 유발하는 건 아닌지 모른다.

미국의 사회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한 국가의 경쟁력은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정치에 ‘만약’이라는 단어는 공허하다고 하지만, “평소 여야간의 협상 파트너로서의 최소한의 신뢰만 형성돼 있었다면”이라는 아쉬움이 나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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