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하정민기자] 일본 경제의 성장둔화 논쟁이 뜨겁다. 3분기 성장률을 비롯해 최근 발표되는 주요 경기지표가 잇따라 부진을 나타내고 엔 강세까지 겹치자 성장 모멘텀이 꺾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반면 부동산 경기가 되살아나고 소비 지출이 늘면서 일본 경제가 경기침체의 그늘에서 벗어날 기틀을 마련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해외 언론들도 상반된 평가를 보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엔 강세가 일본 경제의 성장 동력인 수출과 투자를 감소시켜 일본이 다시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 경제가 고질적 문제점인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고 있다고 29일(현지시간) 평가했다.
◆블룸버그 "엔 10% 오르면 성장률 0.2%p 하락"
블룸버그통신은 급격한 달러약세가 진행되면서 수출의존도가 높은 일본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고 진단했다. 달러 약세 추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만큼 일본 경제의 어려움도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작년 4분기와 올해 1분기에 2분기 연속 연율 6%대 성장을 이어갔던 일본 경제가 또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추락할 지 모른다는 비관론까지 나온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엔 상승이 예상 외로 일본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드레스트너클라인워트의 시로타 슈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석 달 동안에만 엔화가 달러에 대해 6.6% 상승했다"며 "현재 일본 경제는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달러/엔 환율이 현 수준에서 안정을 찾을 경우 일본 수출경기는 상당한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클레이즈캐피탈의 야마자키 마모루 이코노미스트는 "엔 가치가 10%씩 오를 때 마다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2%포인트씩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미즈호경제연구소는 "달러/엔 환율이 100엔 이하로 떨어질 경우 2004 회계연도(올해 4월~내년 3월) 일본 경제 성장률이 0.1%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엔 강세 전망에 따라 2005 회계연도 성장률 전망치도 기존보다 0.2%포인트 낮은 1.9%로 제시했다.
일본 기업들도 엔 강세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일본 최대 자동차업체 도요타, 후지중공업 등 주요 대기업들은 엔 강세가 3분기 실적에 타격을 줬다고 밝힌 바 있다. 히로시 오쿠다 게이단렌 회장은 "달러/엔 환율이 105엔 이하로 떨어지면 수출업체의 이익은 더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업들의 투자도 그만큼 위축되는 셈이다.
◆WSJ "소비경기 살아난다..디플레 극복 가능"
월스트리트저널은 금융개혁, 물가하락세 둔화 등으로 경제 체질이 바뀌고 있다는 데 중점을 뒀다. 엔 강세가 수출경기에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은 맞지만 내수 회복이 이를 상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지난 9월 일본 정부는 올들어 도쿄시내 집값이 17년만에 상승세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부동산 외에 의류, 신발 등 생필품 평균 가격도 지난 5월 이후 전년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루이비통, 프라다 등 명품 소비도 과거보다 활발하다.
이에 따라 일본 경제가 조만간 디플레이션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높다. 지난달 일본은행(BOJ)은 2005년 회계연도에 일본 소비자물가가 0.1%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메릴린치의 아이다 다쿠지 애널리스트는 "물가 상승은 일본의 구조적인 경기침체가 끝났다는 의미"라며 "일본이 1980년대 말처럼 세계 경제를 이끄는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신문은 작년 3월 취임한 후쿠이 도시히코 BOJ 총재가 `디플레이션 종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금융시장에 꾸준히 전달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후쿠이 총재가 취임한 후 한 달만에 일본 주식시장이 상승세로 돌아섰으며 소비자들도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