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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순엽 박기주 기자] 3명의 희생자를 낸 목동 빗물펌프장 참사가 지방자치단체와 시공사 등의 안일한 안전 대책이 낳은 인재(人災)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시설을 관리하는 이들 기관의 소통이 원활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던 것이다. 사고 이후엔 지자체과 시공사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불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터널 내 알림장치 없어 외부와 소통 불가
지난달 31일 오전 수도권 전역에 내린 갑작스러운 폭우로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근무하고 있던 노동자 3명이 참변을 당했다. 빗물을 저장해 흘려보내는 터널 상류 구역에서 수문을 개방했는데 이 사실을 모른 채 하류 구역에서 점검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물살에 휩쓸린 것이다.
이 사고가 발생한 터널은 신월동 일대 저지대 침수 예방을 위한 지하 60m 깊이, 총 3.6km 길이의 시설로 일정 수위에 다다르면 수문을 개방해 하류 구역으로 내보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이 시설을 점검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수문이 자동으로 열려 터널에 빗물이 들어차면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시공사 측은 “터널에 유입된 빗물이 예상보다 빨리 도달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했다. 시공사 현장소장은 “지난 28일 마지막 수문개방 시운전을 할 때 유입수가 종점까지 도달하는 데 49분이 걸렸다”며 “해당 직원이 그 시간(오전 7시 50분)에 들어가도 충분히 작업자를 안전하게 데리고 나올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양천구·현대건설, 소통만 잘 됐어도 사고 없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터널 내 인원 진입 여부를 파악하고 있는 시공사와 수문 개폐를 책임지는 양천구청 간 소통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당 시설과 연결된 각 저류조는 일정 수위를 넘으면 자동으로 수문이 열려 터널로 빗물이 흐르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긴급 상황에선 수문을 수동으로 조종해 개폐 시점을 조정할 수도 있었다. 이날 진행된 시설점검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진행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 사실을 양천구청이 알고 있었다면, 혹은 현대건설 측에서 양천구청에 즉각 연락을 취해 수문을 닫아달라고 했다면 이들 직원 3명이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공사에선 양천구청에 ‘터널 내에 직원이 있으니 수문을 열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양천구청 측에 하지 않았다. 양천구청도 저류조 수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고작 2분 전에 시공사 측에 알렸다. 결국 양측의 소통 부재가 참극을 만들어낸 셈이다.
그러자 양천구청 측은 해당 시설이 아직 준공되지 않아 수문 개폐 권한을 구청이 온전히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구청 관계자는 “공사 진행 중엔 서울시와 양천구청, 시공사가 합동으로 (시설을) 운영하게 돼 있다”며 “준공돼 모든 매뉴얼이 넘어왔을 때 양천구가 관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정 수위가 넘으면 수문이 자동으로 개방된다는 사실은 공유돼 있는 상태”라며 “우리는 작업자가 (시설 내부) 투입됐는지를 몰랐다. 시공사에서 양천구청에 ‘사람이 있다 없다’나 ‘무슨 작업을 한다’는 걸 말해줄 의무도 없고 여태까지 그렇게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양천구청과 시공사 사이 책임 공방이 오가자 자신을 실종자 가족이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시공사는 권한이 없다고 하고 양천구청은 책임이 없다고 한다”며 “긴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누구라도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항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