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사이에 끼인 국내 기업들… 무역분쟁 피해자 되나

  • 등록 2019-06-10 오전 7:00:00

    수정 2019-06-10 오전 7:00:00

화웨이 (사진=AFP)
[이데일리 김종호 기자]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 심화의 불똥이 국내 기업까지 튀었다. 미국 정부가 국내 기업에 화웨이 거래제재 동참을 요구한 가운데 중국 정부도 이에 동참할 경우 불이익을 주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매출 비중이 상당한 국내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미국의 화웨이 거래제재에 동참하게 될 경우 중국으로부터 과거 ‘사드 보복’에 준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큰 고민에 빠졌다.

국내 기업에게 중국 시장은 글로벌 최대 시장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중국 매출이 8조3340억원으로 25%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비중이 이보다 훨씬 높다. 지난 1분기 중국 매출이 전체 매출의 47%(3조1600억원)에 달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자칫 중국과의 관계에서 삐끗하면 반도체 등에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화웨이는 삼성전자의 5대 매출처 가운데 하나다. 삼성은 스마트폰 분야에서 최근 들어 화웨이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이 업체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공급하고 있다. 화웨이의 손발이 묶이면 스마트폰 , 통신장비 등의 시장에서 이익을 보는 측면도 있지만 가장 큰 캐시카우인 반도체에서 받는 악영향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가 주력인 SK하이닉스는 매출 가운데 중국의 비중이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급격히 높아져서 실질적인 피해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가뜩이나 중국에서 반도체 반독점 조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도 없다. 일각에서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처럼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 사이에 끼어 애매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피해를 보는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향후 메모리 시장 변동성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업계에선 미·중 무역 전쟁 격화로 인해 화웨이 등 중국 업체들이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어 올 하반기 메모리 시장은 변동성이 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매년 하반기는 주요 전략 스마트폰 출시로 인해 메모리 시장도 성수기에 진입하지만, 세계 2위 스마트폰 업체 화웨이에 대한 글로벌 IT업계의 ‘보이콧’으로 가격 및 수요 전망이 쉽지 않은 것이다. 얼마전 D램익스체인지는 보고서를 통해 화웨이 제재에 따른 서버D램·모바일D램의 수요 감소를 이유로 3분기 D램 가격 전망을 기존 10%에서 15% 하락으로 하향 조정했다. SK하이닉스도 화웨이 물량이 전체 매출의 10~15%를 차지해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등 전자부품 산업과 중국 시장이 한국의 수출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국가 차원에서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어려운 샌드위치 입장인 만큼 정부가 외교력 등을 발휘해 적극적으로 국내 기업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북핵문제처럼 정부가 중재자 역할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나오고 있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요구도 쉽게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미중 갈등 국면이 장기화할 경우 매출 하락을 넘어 시장 퇴출 등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등 국내 업체들은 “공식적으로 확인해 줄 내용이 없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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