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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민정(19·가명)양은 남자친구에게 데이트폭력을 당했다. 동갑내기 남자친구는 다툼이 있을 때마다 김양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자친구의 행동은 더욱 폭력적으로 변했다. 김양을 때릴 듯이 위협하고 말다툼을 하다 김양의 어깨를 밀치기도 했다.
하지만 김양은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학생은 학생답게 공부에 집중하라”는 부모님이나 “연애는 대학에 가서 실컷 하라”는 선생님께 데이트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꺼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이 연애는 무슨”…혼자 앓는 10대들
정부는 데이트폭력에 엄중대처한다는 방침아래 ‘데이트폭력 삼진아웃제’를 도입한 데 이어 경위와 폭력의 정도에 따라 1회 범행시에도 곧바로 구속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10대는 ‘학생이 공부해야지 무슨 연애냐’는 선입견 탓에 도움을 청하기가 어려워 데이트폭력에 방치되고 있다. 학부모나 교사들이 나서 피해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데이트폭력으로 붙잡힌 피의자 6003명 가운데 10대 청소년은 195명(3.3%)을 차지했다. 2016년에는 277명(3.1%), 지난해 315명(2.8%)의 10대 청소년이 데이트폭력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해마다 전국에서 300명 가까운 10대 데이트 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셈이다.
A군은 2016년 4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자신의 여자친구를 학교 복도와 영화관, 식당 등에서 수차례 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 조사 결과 A군은 여자친구가 수학여행에서 남학생들과 어울렸다는 이유로 담뱃불로 여자친구의 다리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10대 데이트폭력의 양상은 성인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연락에 집착하거나 다툼이 있을 때 욕설을 하거나 고성을 지르다가 상대방의 사생활에 개입하는 정도가 늘면서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데이트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성인과 비교해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10대는 연애보다는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선입견에 연애 자체를 금기시하는 학부모나 학교가 적지 않아서다.
“피해 사실 인지하도록 관련 교육 필요”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 피해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가해자가 의도적으로 상황을 조작해 피해자가 스스로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함으로서 가해자에게 오히려 더 의존하게 하는 것을 심리적 폭력을 칭한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외부에서 객관적인 조언을 들을 수 없도록 피해자의 대인 관계를 차단한다.
데이트폭력을 의심하는 상대에게 “네 친구들은 어차피 나에 대해 안 좋은 소리만 하지 않느냐. 그런 친구들은 만나지 말라”고 말하는 식 등이다. 일종의 정서적 학대다.
전문가들은 성교육처럼 교육을 통해 데이트폭력의 개념 등을 10대들도 명확히 알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소장은 “10대들은 어른들 몰래 데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아 데이트폭력이 발생하기 시작했을 때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교육을 통해 ‘이게 데이트폭력이구나’ 하고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부모나 교사들도 10대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피해당사자가 경험을 털어놨을 때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