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자산시장의 흐름을 기반으로 정책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많은 주장들이 있다. 자기의 이해가 걸린 일부 금융기관의 주장을 제외하더라도, 정책금리 인하론은 학계, 연구소 등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하회하고 있고, 물가 상승 압력이 약한 상황이며,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 지역에서 대대적인 양적 완화를 실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장률 제고와 디플레이션 압력의 제거, 나아가 환율 고평가의 해소를 위한 방법으로 정책금리 인하가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부동산 경기 부양의 필요성 역시 정책금리 인하론자의 단골 메뉴다. 실제로 국내 부동산 시장 문제는 심각해 보인다. 집값 하락과 가계부채 문제도 있지만,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고, 이 때문에 부동산 가격 움직임에 따른 가계의 반응이 너무 민감해졌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새 정부는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진행 중인데, 같은 맥락에서 통화정책 역시 부동산 시장 회복을 위해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는 게 정책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주요 배경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들을 보면 정책금리 인하는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은 왜 정책금리 인하에 망설이고 있을까?
첫째, 가계부채 문제다. 아마 가계부채 문제를 얘기하면, 오히려 금리를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더 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부채 문제는 어떤 측면에서 미국보다 조금 더 심각하다. 금융위기와 부동산 가격 하락을 겪으면서도 가계의 부담이 나아지는 쪽으로 진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금융위기를 겪고, 성장률이 낮아지는 과정에도 가계부채는 더 늘었다. 미국이 디레버리징 과정에서 실제로 가계 부채의 총량과 부담을 줄였던 것과 다른 양상이다. 여기에는 부동산 금융을 둘러싼 제도적 문제도 영향을 미쳤지만, 성장률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늦춘 정부의 의도도 녹아 있다. 금리를 높여 부채를 줄이는 방법을 쓰진 못하더라도, 자꾸 금리를 낮춰 가계부채의 총량과 가계 부담을 늘리는 방향 쪽으로 가는 것은 문제를 키울 수 있다는 게 한국은행의 고민일 듯 하다.
둘째, 금리 정책이 갖는 양면성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금리 정책은 광범위하지만 상당히 직접적인 방식으로 경제주체들 간의 부를 이전시킨다.
예를 들어 고금리 정책은 부채를 가진 가계나 정부에 타격을 주지만, 금리 소득자에게는 이익을 안겨 준다. 반대로 저금리 정책은 금리 소득자의 소득을 줄이고, 채무자에게 이익이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여기에는 금리 소득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관점’의차이와 모럴 헤저드 문제, 경제적 효과의 상대적 크기 문제 등이 모두 개입된다. 금리소득을 불로소득으로 인식한다면 저금리 정책이 타당할 수도 있지만, 과다 대출자에 대한 구제는 장기적으로 모럴 헤저드 문제를 야기한다. 게다가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상태에서는 저금리가 현재의 소비를 줄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은행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가격 하락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가격 상승 역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도 한국은행에게 장기적인 자산가격 움직임에 개입하라는 의무를 지웠거나, 의도대로 만들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금융위기의 발발이 결국 금리를 매개로 한 중앙은행과 금융시장의 기능 실패로 본다면, 한국은행의 걱정은 클 수 밖에 없다.
물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필자와 다른 생각으로 금리를 동결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으며, 실제로 조만간 정책금리를 인하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여러 요인들과 거론하지 않은 또 다른이유들은 분명 정책금리 인하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다른 요인이 아닌, 정책금리 인하에 대한 확신만으로 베팅한 채권 투자는 적어도 이 같은 점을 충분히 감안한 후 다시 평가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