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참여정부’는 2년반을 허송세월한 것일까? 혹시 한 가지라도 잘한 게 없을까. 바닥에 떨어진 지지도가 보여주듯이 70%를 잘못한 것이라면 잘한 일도 30%는 있지 않을까. 여야 의원, 정치권 인사, 각계 전문가들에게 “현 정부가 잘못한 게 많다는 것은 다 안다. 그런 중에도 잘한 게 있다면 무엇을 들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열린우리당 대변인 전병헌 의원(서울 동작갑)은 “지난 2년반은 정상적 가치의 승리를 보여준 시기였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이기고, 상식이 비상식을 누르며, 원칙이 반칙과 편법을 이긴다는 평범하지만 경험하기 힘들었던 순리를 확인한 소중한 기회였다. 정의로움과 보편적 상식을 가진 국민에게 올바른 가치와 정신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고한 신념과 자신감을 확인시켰다.”
전 대변인은 “권위주의적 권력 질서를 해체하고 분권(分權)과 자율(自律)의 시대를 열었다”고 말한다. 그는 “17대 총선만 해도 역대 총선 중 가장 깨끗한 선거였다”고 예를 들었다. 전 대변인은 또 “국가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은 역대 정부의 중대 과제였지만 이루지 못했다”면서 “행정복합도시와 176개 공공기관 이전의 실현으로 과감하고 단호하게 실천하고 있다는 것은 평가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열린우리당 김부겸 의원(경기 군포시)은 노무현 정부 2년반의 업적을 탈(脫)권위주의와 돈 안드는 선거제도 정착 두 가지로 정리한다. “그동안 한국정치를 짓누르던 정보정치가 사라지지 않았나. 또 권력형 부정부패도 거의 없어졌다. 노 대통령은 2년반 동안 권력의 유혹을 과감하게 벗어던졌다. 돈 안드는 선거, 즉 깨끗한 선거가 확실하게 정착한 점도 평가해야 한다. 관권과 금권을 동원한 선거는 더이상 발붙일 수 없게 됐다.”
열린우리당 윤호중 의원(경기 구리시) 의원은 돈 안드는 선거 제도 정착, 국가 균형발전과 지방분권, 부동산 정책 등 3가지를 잘한 것으로 들었다. “지난 총선 때 돈 안드는 선거제도는 모두에 의해 확인되었다. 좀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 국민이 과거를 돌이켜볼 때 이 점을 인정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수도권과 지방의 문제가 심각했었는데, 참여정부는 이를 공공기관 지방이전으로 풀었다. 과거 역대 정부가 같은 생각은 했을지 몰라도 지역활성화 의지를 행동으로 옮긴 정부는 참여정부 외에는 없었다. 8·31부동산 대책도 앞으로 평가받을 것으로 본다. 이제까지 이렇게까지 세밀한 부동산 정책은 없었다. 투기 세력은 확실히 잡고 실수요자를 돕자는 게 8·31 부동산 대책의 정책 목표다.”
한나라당 김명주 의원(경남 통영시·고성군)은 “지난 2년반의 업적은 완전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노 정권은 권력기관을 도구화하지 않았다. 검찰, 국정원, 국세청에 의지하지 않은 채 정치를 해왔다고 본다. YS나 DJ도 생각은 했었지만 이를 그대로 실천하지는 못했다.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본다. 이것은 분명한 업적이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전남 함평·영광)은 같은 질문을 던지자 “단연 돈 덜드는 선거가 자리잡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내 경우 17대 총선이 훨씬 덜들었다”고 고백했다. “17대 총선에서 유권자 사이에 선거판이라고 해서 돈이 왔다갔다하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입후보자들이 빈 손으로 유권자를 찾아가도 어색하지 않은 풍토가 조성되었고 유권자 의식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이 의원은 “양면이 있지만 권력기관의 권력 약화도 잘한 점에 포함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력기관이 어깨에서 힘을 뺀 것은 민주화의 내실(內實)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는 설명이다.
촌철살인의 논평으로 유명한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노무현 정부가 잘한 것을 한 가지만 말해달라”고 기자가 묻자 “그것은 한강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유 대변인은 “결과적으로 권위주의 타파는 노 대통령이 잘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권위주의 타파와 관련,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심대평 충남지사와 함께 중부권 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무소속 정진석 의원은 2000년 4월부터 국회의원 선거만 세 번을 치렀다. 총선 두 번과 4·30재보궐선거가 그것이다. 정진석 의원은 “선거개혁 차원에서 돈 안드는 선거제도가 정착되었다는 것은 큰 변화”라고 말한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아무래도 돈이 들었다. 그러나 2004년 총선과 지난번 재보궐선거를 치른 후 획기적으로 달라졌음을 느꼈다. 물론 어른들 뵈러 노인정 같은 데를 빈손으로 가려면 조금은 어색하지만 과거처럼 노골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다.” 정 의원은 “선거개혁이 성공하는 데는 검찰의 추상같은 잣대가 큰 역할을 했다”면서 “검찰도 선거개혁의 주체 중 하나였다”고 강조한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 K씨 역시 돈 뿌리는 선거를 원천적으로 못하게 한 것을 최대의 업적으로 꼽았다. K 교수는 “친구가 17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떨어졌지만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고 했다”면서 “과거에는 십수억원이 기본이었는데, 지금은 그게 없어지지 않았냐”고 말했다. K 교수는 “돈 안드는 선거를 정착시킨 것은 커다란 업적인데도 이를 국민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홍보를 잘못했기 때문으로 본다”고 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OSI)에 따르면 정치 관련 여론조사에서 항상 1위로 나오는 게 정치개혁 부문이다. 김헌태 소장은 “선거 때면 나오는 공천헌금 이야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만 봐도 선거제도와 정당운영 면에서 확실히 투명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