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흔히 뜨지 못한 예술가들은 배고프다고들 한다. 연극이 좋아서, 음악이 좋아서 한 달에 몇십만원의 월급을 받고도 열성적으로 꿈을 향해 내달린다. 처음엔 열정으로 버텼지만 계속되는 생활고에 지친 일부는 결국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다른 일부는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선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람 중에 예술계에 몸 담았던 사람들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스타가 되어 있었다’는 일이 막상 나에게 일어난다면 어떤 기분일까. ‘뮤즈 온 유명’ 주인공인 유명은 배우지만, 청소도우미를 하며 밥벌이를 한다. 대학 시절엔 늘상 주인공을 도맡으며 유명 배우를 꿈꿨지만 막상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자 우울감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보낸다. 급기야 대학 후배가 명품 브랜드의 광고에 등장한 모습을 보며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어느 날, 그녀는 거장의 사진전에 등장한 스무살의 자신과 마주한다.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았던, 가장 밝게 빛나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한 통의 메일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
특히나 연재 초기 악역으로 등장했던 반예나의 인생 굴곡은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누군가를 동경하지만 그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열등감에 휩싸이고, 급기야 동경의 대상을 무너뜨리는 데 몰두하는 그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도 한둘쯤 있지는 않았을까. 그저 한 명의 스타가 탄생하는 뻔한 스토리가 아닌, 여러 인간관계 속에서 나를 찾는 유명과 뻔하지 않은 러브 스토리까지. 드라마로 재탄생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드는 ‘뮤즈 온 유명’의 수진 작가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뮤즈 온 유명은 지난 8월28일 외전까지 마무리됐다. 기다리기 싫어하는 독자라면 지금이 바로 정주행하기 좋을 시기다.
△완결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을 여쭤봐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마지막 화를 그리고 나서는 ‘그래도 망치진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했어요. 외전이 남아서 연재가 끝났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나머지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외전을 그려보니 ‘괜히 끝난 이야기에 사족을 덧붙여 전체를 망쳐버리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에 본편 연재만큼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외전까지 모두 끝냈는데, 후련한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아무 생각도 안들어서 마치 연재를 하지 않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뮤즈 온 유명은 문화·연예계에 대한 취재가 상당한 것 같은데요, 어떻게 취재를 하셨나요.
부끄럽지만 인터넷 검색이 다였어요. 처음 뮤즈 온 유명을 그릴 때는 연예계가 아닌 그냥 주인공 ‘유명’에 대한 이야기라고 가볍게 생각했거든요.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부분들(영화나 드라마 촬영은 어떻게 이뤄지는지)이 생길 때마다 검색해 보면서 나름 상상해 보며 그렸어요.
그럼에도 전혀 모르는 분야다 보니 이야기나 캐릭터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더라고요. 이래서 취재가 필요한 거구나, 절실히 체감했습니다. 간혹 제가 비판의식을 가지고 스토리에 녹였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같은 창작을 하는 입장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겠지 생각하며 그렸어요.
△뮤즈 온 유명의 도화선이 된 ‘은밀의 유작전’은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요.
꿈에서 깬 뒤 이것을 살려 이야기를 만들면 재밌겠다 싶어서 쓴 메모가 누군가가 거장의 유작전을 통해 유명해진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메모가 뮤즈 온 유명이 된 건 몇년 후의 일이고요.
△은밀과 유명, 천진 등 인물들의 이름도 독특합니다. 작명은 어떻게 하시나요.
보통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이름을 지어요. 유명은 원래 전에 준비하던 차기작의 등장인물 이름 후보였어요(거기서의 뜻은 저승과 이승을 뜻하는 유명이었지만요). 그런데 이번 작에서 주인공은 유명해지고 싶어 하니까 유명으로 지으면 좋겠다 싶어 짓게 되었어요.
은밀은 사진을 은밀하게 찍으니까 은밀로 지었고, 은밀과 관련된 사람들은 은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지었어요. 먼저 메타포(은유)엔터테인먼트를 짓고, 은유한(유한하니까)을 짓고 나중에 은유일을 지었습니다.
천진은 1화 ‘소녀’ 영화 포스터에 감독 이름을 채워 넣어야 해서 제가 쓰고 싶었던 필명을 적당히 넣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천진이 등장해야 하더라고요. 덕분에 제 필명을 천진에게 뺏겼네요….
△뮤즈 온 유명에 악역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사정을 알고 나니 결국에는 악역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요. 의도가 있었나요.
악역이라고 생각하고 만든 캐릭터는 1화의 반예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3화, 4화를 그리다 보니 반예나가 대체 왜 이러는지 궁금해졌어요. 악역이라고 정해놨기에 맹목적으로 나쁜 짓만 하게 만드는 건 제가 그 캐릭터를 별로 이해하지 못한 채 행동을 시키고 있는 것 같아서 미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상한 행동을 이해도 할 겸, 저 혼자만 알고 있으면 재미없으니까 독자들에게도 그들에 대해 서술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행동에 대한 정당화를 할 생각은 없었고, 그저 원인과 결과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다양한 관점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현실에선 절대적인 악역이 거의 없잖아요. 뮤즈 온 유명은 현실이 아니지만요.
△전작인 ‘소년, 남자의 이름으로’와 ‘빛빛빛’ 등에서도 그렇지만 웹툰이 굉장히 서정적입니다. 작가님의 문장력, 표현력은 어디서 온다고 보면 되나요.
△작가님의 작품들은 영화화되어도 좋을 것 같아요. 의도하신 부분이 있나요.
2차 창작에 대해선 전혀 생각 못 해봤어요. 뭔가를 노리고 그리는 게 어려워서요. 가끔 콘티를 짤 때 머리에서 영상으로 장면을 떠올리고 만화로 옮길 때가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영화 같다고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작품 내용상 영화 촬영 장면이 나와서 더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이번 작품을 그리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있거나 혹은 기억에 남는 일은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힘들었던 일은 매일 해야 할 분량이 정해져있는데 사람인지라 컨디션이 안 좋으면 정해진 분량을 못할 때가 있었어요. 그럼 뒤로 할 일이 늘어나고 그럴 때면 제발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솔직히 그런 주가 꽤 많았고 약간 미칠 것(?) 같았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결론은 마감을 지키는 게 힘들었다! 입니다.
△평소 책이나 영화를 자주 보시나요. 연재 종료 후 가장 하고싶은 일은?
한달에 책 한두권, 영화는 네 편 정도 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는 없지만 보고나서도 마음에 남는 창작물을 좋아합니다.
연재가 끝나면 게임도 하고 싶고 카페나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었어요. 막상 끝나니 덥기도 하고 별로 하고 싶은 일이 없네요. 역시 일할 때 노는 것이 제일 재밌는 것 같아요. 지금은 차기작 준비가 제일 하고 싶어요.
△차기작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소재가 있나요. 시도해보고 싶은 장르는.
뮤즈 온 유명에 나오는 작중작들 중 하나를 차기작으로 그리고 싶어요. 사실 차기작으로 생각하고 있는 스토리를 이 기회에 먼저 그려봤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덕분에 촬영 장면을 풍성하게 연출 할 수 있었어요. 어떤 작품인지는 아직 말 할 순 없겠지만 뮤즈 온 유명과 비슷한 분위기면서 좀 더 어두운 이야기를 그리게 될 것 같습니다.
뮤즈 온 유명을 그리기 전에 무려 액션장르를 시도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면 그릴 수록 나와는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별히 별로라기보다는 저의 장점을 모두 발현하기엔 애매한 느낌이었습니다. 아! 언젠간 사이버펑크 장르를 그리고 싶어요. 그건 아직 생각만 하고 있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