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눈치 보기 싫은데..." 음지에 놓인 '내국인 공유숙박'

제대로 단속 이뤄지지 않아 불법 횡행
공유숙박 '집주인 실거주 의무' 여전해
고객은 독채 선호…시대 뒤처진 규제
연 180일 영업 일수 제한도 발목 잡아
"유명무실한 낡은 법 고쳐야"
  • 등록 2024-03-18 오전 7:36:00

    수정 2024-03-18 오전 10:04:58

홈파티 이미지 (사진=픽사베이)
[이데일리 김명상 기자] 서울에 사는 직장인 박모씨(33)는 이달 초 서울 망원동 근처에 공유숙소를 잡고 친구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열었다. 집주인이 없어서 눈치 볼 필요 없이 새벽까지 즐거운 시간을 누렸다. 다음날 박씨는 퇴실 후 에어비앤비 앱에 “빔프로젝터로 유튜브 영상을 보려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봤는데 호스트가 늦은 시간에도 바로 알려주는 등 무척 친절했다. 다음에 또 오고 싶은 곳”이라고 댓글을 남겼다.

우리 국민 중 많은 이들이 공유숙박을 이용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이는 불법이다. 현행 관광진흥법상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 규정에 따라 농어촌 민박이나 한옥 체험을 제외한 도심 공유숙소는 ‘외국인만’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은 지난 2011년에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의 가정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바뀐 적이 없다.

최근 공유숙박이 인기를 끌면서 분위기는 변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4일 개최한 규제개혁 추진회의를 통해 외국인에게만 허용했던 도시민박(공유숙박)을 내국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관련 법 개정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다만, 관련 업계는 정부의 방침을 환영하지만 ‘손톱 및 가시’처럼 박힌 규제 개선 처리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대세는 ‘독채’지만 법 규제에 편법 만연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규제혁신 추진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현재 우리 국민은 도심 공유숙소를 조건부로 이용할 수 있다.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받은 ‘위홈’이나 ‘미스터멘션’에 등록한 숙소에 한해서다. 이들을 제외한 ‘에어비앤비’ 등 다른 플랫폼이 취급하는 내국인 공유숙박은 모두 불법인 셈이다. 다만 이번 법 개정이 이뤄지면 모든 플랫폼에서도 이용이 가능해진다.

공유숙박 업계는 내국인 공유숙박의 제도화 이전에 해묵은 과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것이 호스트(집주인) 실거주 의무다. 현행법은 거실이나 남는 방 등 주거지 일부를 손님에게 빌려주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만큼 호스트가 반드시 실거주해야 한다. 호스트가 집에 머물지 않고 통째로 빌려주는 독채 공유숙박은 단속 대상이다.

문제는 독채는 이용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유숙박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집주인을 대면하지 않고, 낯선 타인과 같은 공간에 머물지 않는데다 밤늦게 시간을 보내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 심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경우 안전 등을 이유로 처음 만나는 이성 호스트와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보다 독채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글로벌 공유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에서는 내·외국인을 구별하지 않고 독채 예약을 받는 호스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엄연히 불법이지만 수익을 우선하는 호스트로서는 이용객의 요구에 따라 유혹을 떨치기란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단속 강화가 필요하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다. 2022년 국정감사에서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에어비앤비 등록 숙소는 경기와 인천 지역을 제외하고 4만9770개였다. 일일이 단속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예산과 인력이 받쳐주지 않는다. 단속 공무원은 전수조사는 고사하고 제보를 받아 방문하더라도 투숙객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주거침입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딱히 단속할 방법이 없다. 현행법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 숙박 스타트업 관계자는 “호스트는 외국인만으로는 안정적인 수익을 얻기 어려워서 내국인 이용객을 뿌리치기 어려운데 단속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알면서도 불법을 저지르게 되는 구조”라며 “수요가 원하는 방향으로 공급이 이뤄지기 마련인데 법이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를 하고 있으니 편법과 불법이 성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과 같은 선상에서 뛰게 해달라”

해외 주요 도시 공유숙박 임대 가능 일수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국내 토종 업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까다로운 국내 법을 지키면서 영업하고 있지만 혜택은커녕 규제가 발목을 잡는 구조라는 것이다.

실제로 ‘위홈’과 같은 공유숙박 실증특례 업체는 내국인 대상 영업을 연 180일까지 할 수 있다. 호스트 입장에서는 수익이 줄어드는 영업일수 제한이 달가울 리 없다. 게다가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인지도나 이용객 수에서 우월한 글로벌 플랫폼을 선택하는 것이 고객 유치에 유리하다. 국내 기업이 현실과 법의 괴리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글로벌 기업인 에어비앤비가 몸집을 불리게 되는 셈이다.

조산구 위홈 대표는 “국내 업체는 외국계 플랫폼에 비해 자금력과 인지도가 부족한 데다 온갖 규제의 압박을 받는 열악한 환경에 있지만 법 개정에 진척이 없다 보니 투자금도 회수되는 형편”이라며 “적어도 외국계 기업과 동등한 선상에서 경쟁하게 해달라는 것인데 호소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규제샌드박스 실증 특례는 왜 내준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대적 변화를 인정하고 공유숙박을 제도권 안에서 형평성 있게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도 공유숙박업에 대한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책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내국인 공유숙박 허용 문제는 유관 부처가 많고 가벼운 사안이 아닌 만큼 여러 가지 방안을 열어놓고 논의 중”이라며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만큼 숙박업계나 공유숙박 플랫폼 관계자들과 자주 만나면서 의견을 수렴하고 내용이나 시기를 조절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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