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보험사기 대응, 손발 묶인 보험사

  • 등록 2019-08-13 오전 6:00:00

    수정 2019-08-13 오전 6:00:00

[이데일리 유재희 기자] 장모씨는 고령의사를 고용해 일명 ‘사무장병원’을 개설한 후 대학병원 등에서 암 치료를 받고 통원치료 중인 환자들에게 접근했다. 장씨 등은 암환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하는 수법으로 15억원을 가로챘다. 또한 환자들에게 입원료 명목으로 1일당 4만~12만원씩 받고 허위로 입·퇴원 확인서를 발급해 이들이 총 101억원의 민간보험금을 부당청구하도록 방조했다.

한 외과의원은 무릎관절염으로 26일간 입원한 환자와 짜고 주 1회 단위로 권장되는 체외충격파 치료를 177회 실시한 것으로 부풀렸다. 의원은 이를 바탕으로 건강보험 진료비를 청구하고, 환자는 과다청구된 진료비 영수증으로 실손보험금을 받아 실제 진료비를 제외한 차액은 생활비 등으로 사용했다.

‘보험사 돈은 눈먼 돈’. 최근 보험사기로 적발된 A병원의 병원장 B씨 책상에서 발견된 메모다.

지난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금액은 7982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대비 680억원 증가한 규모다. 적발인원은 7만9179명으로 1인당 사기금액이 평균 1010만원에 달한다. 과거에는 보험사기가 생계형이었지만 점점 조직화·전문화되면서 1인당 사기금액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보험설계사나 병원 관계자 등 전문 인력들이 주도하면서 보험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금 누수다. 보험업계는 민영보험의 보험금 누수액을 연간 6조원, 공영보험(건강보험재정) 누수액은 1조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보험금 누수는 보험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선량한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국가재정에도 피해를 끼친다. 실제 보험업계는 보험사기로 인한 가구당 보험료 추가 부담액이 30만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보험사기는 경제 사회의 질서를 해치는 데다 살인·방화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물론 금융·수사당국과 보험업계가 보험사기에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청은 지난 7월부터 11월 말까지 보험사기 특별단속기간으로 정해 투입 인력을 대폭 확충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보험사기 급증 집단을 선별해 교육을 강화하고 보험금 누수가 심각한 분야에 대해 기획 조사를 진행 중이다. 보험업계도 보험사기조사팀을 확대 개편하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보험사기방지 시스템을 운영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진화하는 금융사기를 막기 위해서는 처벌 강화와 함께 보험사에 조사권을 주거나 민간조사관제도를 도입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년째 표류하고 있는 민간조사업법(탐정법) 제정으로 보험사의 보험사기 전담부서(SIU) 직원들이 법의 보호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SIU 직원들은 법적 수사권이 없어 현장 탐문조사를 하는 것 외에는 사기 근거를 모을 방법이 없다. 게다가 탐문조사 중 혐의자들이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면 조사를 중단해야 한다.

이와 함게 건강보험 부정수급 적발을 위해 건보공단의 특별사법경찰제도 도입도 절실하다는 게 보험업계의 주장이다. 국민 역시 보험금을 눈먼 돈으로 여기는 인식을 고쳐야 한다. 이 같은 노력이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보험사기 근절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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