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도 궁합"…억대 名品악기 임자 따로 있었네

300~400년 전 만들어진 악기
몸값 10억~180억 '천문학적'
금호아시아나·삼성문화재단 등
촉망받는 연주자에 임대·후원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크레모나' 쓴 이후 우승
새끼손가락 짧은 주미강 스트라디바리우스 '딱'
  • 등록 2016-05-12 오전 6:16:00

    수정 2016-05-14 오후 6:52:05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강(왼쪽부터)은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김다미는 올해 두 차례 오디션을 거쳐 1740년산 도미니쿠스 몬타냐나를 꿰찼다. 신지아는 도미니쿠스 몬타냐나에 이어 클로츠 바이올린을, 임지영은 과다니니 크레모나를 쓰다가 올해부터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허긴스를 사용 중이다.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연주자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동반자다”(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나는 음색이 남다른 내 악기와 사랑에 빠졌다”(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

연주자에게 악기는 목소리다. 악기를 통해 말하고 싶은 바를 관객에 전달하기 때문이다. 클래식계에선 같은 악기여도 연주자의 개성과 길들임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는 게 정설이다. 그만큼 딱 맞는 옷처럼 궁합이 잘 맞는 악기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1794년산 과다니니 크레모나. 연주자들이 콩쿠르에 들고 나갈 때마다 두각을 나타내 ‘행운의 바이올린’으로 불린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1)은 2014년 10여년간 쓰던 국산악기를 1794년산 과다니니 크레모나로 바꾼 뒤 굵직한 국제콩쿠르에서 잇달아 우승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악기은행을 통해 3년간 무상대여를 받아 고(古)악기를 쓰기 시작한 지 다섯 달 만에 인디애나폴리스 국제바이올린콩쿠르에서 3위에 오르더니 이듬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선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는 쾌거를 올렸다.

1774년산 과다니니 투린을 사용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27)는 “연주자에게 악기는 말하고 싶은 바를 말하게 해주는 목소리다. 목소리에 따라 신뢰도가 달라지듯 무대에서 악기의 영향력은 막대하다”면서 “현재 쓰고 있는 투린처럼 좋은 악기를 다룬다면 관객을 설득하기에 아주 유리하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과르네리…명품 古악기

클래식 스타 대표주자인 피아니스트 손열음(30), 첼리스트 김범준(22),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29)·클라라 주미강(29)·김다미(28)·최예은(27)·이수빈(15) 등 모두 ‘귀하신 몸’의 수혜자들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명품악기의 몸값은 최저 10억원에서 최고 180억원대. 이탈리아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300∼400년 된 악기일수록 가치는 더 오른다. 그중 현악명기로 꼽히는 게 스트라디바리우스, 아마티, 과르네리, 과다니니다.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거래되는 만큼 기업이나 특정재단이 악기를 매입해 수준급 연주자에게 임대하거나 무상으로 후원하는 식이다.

국내에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연주자를 위해 1993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과다니니를 포함한 바이올린 8점과 첼로 1점, 피아노 1점을, 삼성문화재단은 과르네리 델제수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포함한 바이올린 2점과 첼로 2점 등을 보유하고 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이탈리아 스트라디바리가문에서 16~18세기에 걸쳐 제작한 악기 명칭이다. 남성적이고 드라마틱한 소리를 지닌 과르네리와 달리 부드럽고 섬세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르네리 델제수는 17~18세기 이탈리아 크레모나지역 현악기 제작가문인 과르네리가 만든 악기 중에서도 명기 중 명기다. 세계에 120여대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뵈젠도르퍼는 오스트리아에서 1828년 탄생한 피아노로 19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프란츠 리스트가 평생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박성용(1932∼2005) 전 금호그룹 명예회장이 20여년간 애지중지하다 손열음에게 선물했던 피아노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랜드피아노의 경우 대당 가격이 2억 5000만원을 호가하는 명품이다.

연주자 vs 악기, 궁합 맞아야 효과 내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강은 악기를 꼼꼼히 따지는 편. 주미강은 요즘 삼성문화재단에서 후원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쓰고 있다. 주미강은 “손이 얇고 새끼손가락이 짧은 편인데 지금 악기는 불편하지 않다. 더 편안해졌다. 과거 연습을 해야만 나온다고 생각했던 꿈꾸던 소리가 쉽게 나온다. 연륜이 쌓인 것도 있겠지만 지금의 악기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만으로 이뤄진 현악4중주단 스트라디바리 콰르텟의 4대 악기 가격은 172억원에 이른다.
최근 첫 내한한 ‘스트라디바리 콰르텟’은 스트라디바리우스만으로 이뤄진 현악4중주단이다. 이들이 연주하는 악기 4대의 가격만 1300만유로(약 172억원)에 이른다. 스위스의 하이브로이팅거 재단이 소유한 악기를 후원받아 2007년 결성한 실력파 악단이다. 1717년산 첼로를 사용 중인 멤버 마야 베버는 “지금 악기는 음악을 표현하는 완벽한 도구다. 외부 요인에 따른 제한이 거의 없다”며 “악기 외에 악단의 주요 퀄리티는 음악을 바라보는 분산된 시각과 에너지, 넓은 소리판인 것 같다. 통일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아주 많은 이야기를 무대에서 꺼내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라디바리 콰르텟의 지난 공연을 놓쳤다면 명기를 다시 들어볼 기회가 온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을 비롯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완벽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이란 찬사를 받는 제임스 에네스, LA필하모닉 첼로수석인 로버트 드메인, 바이올리니스트 에이미 슈워츠 모레티로 구성한 ‘에네스 콰르텟’이 오는 6월 25일부터 7월 3일까지 나흘간 6회에 걸쳐 베토벤 ‘현악4중주’ 전곡 연주에 나선다. 제임스 에네스는 1715년산 마르지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쓰고 있어 세월의 깊이가 켜켜이 쌓인 유려한 음색을 확인할 수 있다.

콩쿠르서 우승 부르는 가장 비싼 현악기는?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우승을 부르는 악기도 있다. 악기 교체 후 국제콩쿠르에서 잇달아 우승한 임지영은 “크레모나를 쓰기 시작하면서 부드럽고 섬세하면서도 특유의 힘 있는 소리가 뒷받침돼 악기와 한마음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며 “연주자의 의도와 느낌을 예민하면서도 편하게 표현해내 궁합이 잘 맞는다.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라고 말했다. 임지영이 우승 부상으로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허긴스를 4년간 대여받으면서 최근 반납한 크레모나는 금호영재 출신 이수빈이 3년간 이어받게 됐다.

크레모나는 ‘행운의 바이올린’으로 통한다. 권혁주도 이 악기로 칼 닐센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는 “건강한 소리를 내는 크레모나는 콩쿠르가 요구하는 소리에 잘 맞는다”고 말했다. 이후 최예은(2006년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 2위), 김봄소리(2013년 ARD국제콩쿠르 1위 없는 2위) 등이 줄줄이 상을 받았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측은 “난도 높은 기교와 섬세한 감정 표현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악기가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면서도 “좋은 악기더라도 연주자와 궁합이 맞아야 효과를 낸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존하는 최고 몸값의 현악기는 1721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레이디 블런트다. 2011년 타리지오 경매서 180억원에 팔렸다.

2016 금호악기은행 수여식에서 김동현, 이수빈, 박삼구 회장, 김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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